안녕하세요, 6기 졸업생 조유미입니다. 간디학교 졸업생 뉴스레터 발간 소식을 듣고 구독하면서 조용히 응원만 보내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편집자분께서는 아마 정미숙 선생님의 ‘글도 제법 쓰는 친구’라는 추천으로 연락을 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창 과잉된 자의식이 넘치던 고등학교와 20대 극초반 시절 이후로는 독서와 글짓기의 빈도수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라, 전화를 받고 조금 뜨끔했습니다. 앞서의 소식지를 보니 에세이나 소설처럼 멋진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기고문을 보내오셨던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도 되었고요. 하지만 어쨌거나 일은 하고 있으니 또 못 쓸 것도 없겠다 싶었고 무엇보다도 커리어에 대한 글이라면 정보성의 건조한 글이라도 이해하고 넘어가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자기소개로 운을 떼고 시작합니다. 재미없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이야기를 길게도 썼지요?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에게는 참고가, 이미 커리어를 쌓아가고 계신 분들에게는 흥미로운 정보가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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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MD로 업무를 시작하여 기획자로 커리어를 전향하였고, 현재 아디다스 코리아에서 웹/앱 매니저라는 포지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UI/UX (유저 인터페이스/유저 경험)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직무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메인 페이지에서 신상품을 먼저 보여줄지 혹은 베스트셀러 상품을 보여줄지, 회원가입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진행할지 한 페이지에서 모두 작성하도록 할지 등 온라인에서 사용자가 경험하는 것들을 보다 편리하면서도 브랜드의 개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기획하는 작업입니다. 명칭은 회사마다 조금씩 달라서 PM (product manager) 혹은 PO (product owner)라고도 하는데 대개 온라인 상의 다양한 직무 타이틀이 조금 애매하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파악이 어려운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마 업무 환경과도 영향이 있을 텐데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온라인 시장은 워낙 변화가 빠른 곳이라 계속 새로운 직무가 생기거나 변동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안정적이고 꾸준한 무언가를 찾는 분보다는 새롭게 배우고 바꿔나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사마다 웹 기획자의 역할도 천차만별이라 건축가가 설계도면을 그리듯 빈 화면에 와이어프레임을 그려 (말이 좋아 프레임이지 대개 파워포인트에 손수 네모 창 네모 버튼을 그려가는 노가다입니다) 디자이너, 개발자와 소통하는 기획자도 있고,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시스템 설계 기획을 집중적으로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한국 현지화 하는 기획을 주로 하고 있고요. 그런 와중에도 공통된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끝없이 소통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분야에 매우 깊고 전문적인 지식을 지니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다소 얕은 지식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부분을 이커머스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주로 MD나 CS 파트와 개선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개발자와 퍼블리셔, 디자이너와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는 식으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조율과 결정이 가능하기에 비교적 이해도가 있는 MD 업무 외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씩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아 너그러운 동료를 만난 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해왔다는 것만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이 예상보다 쉽게 풀리더라고요. 남의 얘기만 잘 들어줘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분야라니, 솔깃하지 않으신가요?

모든 분들이 제 직업에 관심있는 것도 아닐테고 요즘이야 검색만 해봐도 직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는지라 자질구레한 설명은 건너뛰고 커리어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 가장 큰 불안은 두 가지였습니다. 

     1) 다들 진로를 벌써 결정한 것 같은데 나는 사실 모르겠어. 어떡하지? 

     2) 뭘하고 싶은지 몰라서 대학은 안 갈 건데 그럼 내 인생 다음 과정은 어디서부터 밟아야하지?

앞서 밝혔듯이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건 미래의 희망 진로가 없다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주변은 나를 빼고 모두 형형하고 또렷한 눈빛으로 원하는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도 뭔가 되긴 할 거라고 선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아직 큰 미래를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저는 대체적으로 평온하고 작은 주기로 행복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편하고 최고의 컨디션을 낼 수 있는지, 나라는 놈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시기를 거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혼돈의 시기를 거쳐야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르던 늦던 언젠가는 오는 시기이니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체력이 튼튼한 20대 때 겪어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음에 끌리는 것들을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저는 마케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패션 업계를 접하면서 패션 MD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관련 공부를 위해 유학을 마친 이후에 MD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첫 직장에서는 오프라인 MD 업무를 맡았지만 업계에서 갈수록 커지는 온라인 시장이 보이다보니 커리어 초반에 온라인 MD로 전향, 그 이후 웹기획으로 다시 커리어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일을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결국 앞서의 큰 두 가지 불안함은, 무언가를 해보는 것으로 점차 해소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한 번에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게 가장 어려운 지점입니다. 어쩌면 그 과정을 겪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을 길게 할애해 이만 줄이지만, 만약 진로 관련해서 더 듣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메일 주세요. 그리고 12월에 발간되는 뉴스레터 기고자의 특권으로 이렇게 말해봅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