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기, 전우주적으로

이렇게 강남 한복판에서 만나니까 새롭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스무 살 때 봤나? 내가 군대 가기 전에 봤으니까. 언제 시간이 이렇게. 

일단 자기 소개 한 번 해줘. 

14기 졸업생 위성환이고요. 지금 하는 일은 1인 개발자 일을 작년까지 하다가 요새는 코딩 교육도 같이 하면서… 컴퓨터 일 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일단은 유니티라고 하는 게임 엔진을 주로 사용을 해서 게임을 만들어서 아이폰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올리는 거야. 인기가 많으면 이제 수익도 얻고. 코딩 강의는 최근에 시작했고.

의외의 모습이야.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운동장에 있거나, 기타를 치고 있거나, 연애를 하고 있거나 셋 중 하나였던 것 같아. (웃음) 

내 고등학교 시절을 확실히 요약해줬다. (웃음) 

그럼 지금부터 한번 시작해볼까. 아까 내가 ‘셋 중에 하나’였다고 요약하긴 했지만, 본인 생각에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낸 것 같아?

일단 중학교도 대안학교 나와서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 실상사작은학교라는 대안학교였는데 비인가였고, 간디보다 훨씬 더 야생. 그래서 간디학교 갔을 때 사실 좀 편했어.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그냥 재밌게 살았던 것 같아. 처음에는 부모님 추천이었지.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그냥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갔어. 입학할 무렵에 안솔기 마을로 이사를 하기도 했고. 기숙사보다도 학교랑 가까운 곳이잖아.

내 기억에 굉장히 ‘인싸’였는데. 1학년 때 눈썹에 피어싱하고 그랬잖아. 축제 때는 무대에 계속 올라오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고. 

딱 입학을 했는데 노래를 좀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음악 쪽 동아리를 많이 했지. 방송부도 하고 ‘코다(민중가요)’ 하고 ‘언니네(댄스)’ 하고, 밴드도 많이 했었고. 지금 춤 추라고 하면 절대 못 출 거 같아. 축제 때는 공연 세 네개가 기본이었고. 욕심이 좀 많았던 것 같아. 축구도 되게 좋아했고 형들한테 예쁨도 많이 받았고. 또 4.19 마라톤 때 파트너 손 잡고 뛰잖아. 그거 아직도 하나? 

문제제기가 되서 이제 안한다고 들었어. 꼭 남녀가 손을 잡고 이런 거 하지 말자. 우리 때는 그런 생각 별로 없었지.

난 그거 되게 좋았는데. (웃음) 아무튼 그러면서 연애도 하고. 1학년 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 무대에 서고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그런 게 재밌었고. 

그 ‘꿀벌 기타’ 아직도 있어? 

아직도 있지. 중학교 2학년 때 산 기타야. 아빠가 광주에 금호상가라는 데서 기타를 사줬는데, 주목받고 싶고 뭔가 좀 특이한 걸 사고 싶은 거야. 난 평범한 기타는 사지 않겠다. 근데 그 기타가 막 빨려 들어가는 거 같은 특이한 무늬였어. 그리고 기타 로고가 ‘Indie’ 였어. 일단 로고 합격. 인디? 인디 감성 못 버리지, 하면서 샀지.

나 지금 기억나는 게 우리 때 제이슨 므라즈가 되게 인기였잖아. 내 휴대폰에 번호가 ‘위라즈’라고 저장돼있었어.

어 맞아. 제이슨 므라즈 영상 보고 기타를 시작한 거야. 그때 이제 ‘I’m Yours’가 히트 치면서 나도 이 노래 기타 치면서 부르고 싶다 싶어서 기타를 시작하고 연습을 막 했지. 모자도 막 비슷한 거 쓰고. 눈썹 피어싱 한 것도 그래. 다들 귀를 뚫잖아. 또 나는 귀는 너무 흔해, 나는 눈썹을 뚫어버려야겠다 한 거야. 근데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 중에 가장 아팠어. 그거 나중에 골키퍼 하다가 강슛에 맞아서 살이 찢어지고 난 다음부터 안 했지.

그런데 중학교에 비해서 정규 교과과정을 따라가야 했잖아. 수업이 힘들진 않았어?

노력을 해야 힘든데 노력을 안 했어. 2학년 때까지 내신이란 게 뭔지도 몰랐고. 가끔씩 흥미로운 수업이 있긴 했지만 별로 중요하다고 못 느꼈어. 수업 빠지고 노는 게 너무 재밌었고. 너랑도 같이 빠지고 많이 놀았지. (그랬지.) 일탈을 많이 했던 거 같아. 가끔해야 일탈인데 거의 일탈이 일상이 될 정도로. (웃음) 대신 음악사나 작사작곡 수업 같은 건 한 번도 안 빠졌어. 짱쌤한테 그 쪽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 욕심이 많았는데 일단 다 했어. 민중가요 공연 필요하다고 하면 가고, 노래대회도 나갔었고. 방과후에는 늘 바빴지. 맨날 기숙사 늦게 들어오는 애였어. 

밤에도 할일이 많잖아. 

그렇지. 별 보러 가야지. 별 보러 가고 밤새 문자 하고. 그때는 연애하는 사람이 전부인 것처럼 신경도 많이 썼어. 그때 뭐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밤이 또 고민타임이잖아. 기숙사에서 애들끼리 서로 고민 얘기하고, 아니면 기숙사 몰래 탈출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3학년이 되니까 어땠어?

그래도 진로 고민을 좀 했어. 사람들이 너는 음악할 것 같다, 노래할 것 같다, 이렇게 말했는데. 평생 음악을 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고, 공부를 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러다 한 일주일 정도 방송음향 관련 스태프 일을 할 기회가 있었어. 일주일 정도 일을 해봤는데 엄청 힘든 거야. 내가 방송부 동아리 하던 거랑 아예 다른 일이었고. 현실을 많이 깨달았던 것 같아. 학교에서 방송부 할 때는 내 친구들이 무대에서 좀 더 돋보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재밌었는데 그런 보람을 아예 느낄 수가 없더라고. 생각보다 완전 몸 쓰는 일이기도 했고.

고민은 많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던 거 같아. 3학년 때 인턴십 가잖아. 진짜 뜬금없이 ‘책방 이음’으로 인턴십을 갔어. 책도 안 읽는데 그냥 인턴십 신청 잘 받아준다길래 간 거야. 아, 수시를 하나 넣기는 했다. 음향 관련 전문대학이었어. 면접보고 떨어졌지. 그때도 수시철 되니까 원래 안 갈 것 같은 애들도 갑자기 준비를 하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도 지원을 한번 해본 거 같아. 그때쯤부터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졸업을 하게 된 거네. 이제부터는 내가 모르는 얘기겠다. 

응. 그리고 나는 군대에 대한 두려움이 되게 컸었거든. 되게 큰 벽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졸업 직후에 일단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카투사라는 걸 알게 됐어. 그걸 한번 해보자 싶어서 토익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 영어수업도 맨날 빠졌긴 하지만 내가 그나마 좋아했던 게 팝송이었어. 처음으로 영어학원을 다니고 시험 공부라는 걸 해보니까 진짜 어렵더라고. 기본도 없고 하니까 좋은 성적을 못 받았어. 6개월 정도를 공부했다가 포기를 하고, 엄청 막막한 거지. 영장은 언제 나올지 모르고, 뭘 할까 하다가 일단 집에 있기는 싫었거든. 집이 고등학교랑 너무 가깝기도 하고 너무 시골이니까. 그래서 부산에서 자취를 시작했어. 자취방에 딱 혼자 남은 첫날밤에 기분이 너무 이상하더라고.

그랬을 거 같아. 중학교 때부터 기숙사생활 했으니 10대 내내 북적북적하게 살았을 텐데. 

그치. 진짜 고요하다 해야 되나. 그때 이제 알바라도 구하려는데 막 고등학교 졸업했고 알바 경력도 없으니까 백화점 경비, 마트 물류 이런 데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 그러다 카페 알바에 합격해서 열심히 했지. 고등학교 때 커피 방과후수업이 재밌어서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됐거든. 근데 거기가 번화가라서 술 취한 손님, 토하는 손님도 보고 그랬어.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멋지게 커피 내리고 그런 예술적인 직업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러다 입대영장이 갑자기 나온 거야? 

스물 한 살 때 영장이 나왔어. 중장비병으로 가면 좀 편하다길래 굴삭기 자격증을 따서 갔거든. 근데 생각보다 되게 운전을 잘 해서 칭찬도 많이 들었고 2년 내내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안 해본 작업이 없더라고. 군대에 있으면서 중장비 관련 자격증을 다 땄단 말이야. 직업으로 삼아도 될 정도였어.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거지. 스물 셋이었는데, 웃기지만 그때는 늦었다고 생각했거든. 더 늦기 전에 미련 남는 거를 해보고 싶었어. 

그게 노래였어. 제대하고 나서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보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거든. 학원 다니면서 알바하는 게 힘들었기도 했고, 부모님 지원을 계속 받는 게 마음이 초조했어. 그때 학원에서 권유해서 보컬 쪽으로 대학 준비를 했었어. 옆에서 노래 잘하는 애들 보면서 스스로 비교도 많이 하고, 회의감도 들었어. 고등학교 때는 나름대로 내가 노래 제일 잘하는 애였는데 노래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애들 사이에서 준비를 하다 보니까 되게 힘들더라고. 그러면서 내가 고등학교 때만큼 노래에 대한 열정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결국 음악은 취미로 하자는 결정을 했지. 약간은 씁쓸한 느낌이 있었어. 왜냐하면 진짜 음악을 한 게 아니고 대학 준비만 하다 온 느낌이라서. (둘은 무슨 차이야?) 음악을 하는 건 자기 것을 만드는 느낌이라면 대학 준비하는 건 노래 실력만 가다듬고 그런 것 같아.

그 다음에 이제 코딩을 시작한 거지? 

그렇지. 그해 12월에 딱 그만 했으니까. 스물 넷에 코딩을 시작했는데, 일단 음악을 하고 고민하는 거에 신물이 났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씩 짚어봤어. 나 뭐 좋아하지? 커피 좋아했고, 노래 좋아했고. 그다음에 게임도 진짜 좋아했거든. 어릴 때에는 PC방 다니고, 집 가면 며칠 내내 게임만 하고 그랬어. 마침 그 즈음이 모바일 게임이 뜰 때였기도 하고, 그래서 내 게임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을 했지. 

근데 나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것 밖에 할줄 몰랐단 말이야. 한글이나 엑셀이나 PPT 만들고 이런 것도 못했어. 그래서 유튜브에 ‘게임 개발자 되는 법’, 이렇게 검색해봤어. 코딩이라는 거를 할 줄 알아야 된다 하더라고. C언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인데 그거를 먼저 해야 된다길래 마음 먹고 학원을 등록을 했어. 생각보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이 거의 필요가 없었고 수학도 거의 필요 없더라고. 무작정 따라하면서 실제로 작동되는 걸 보면서 재미를 느꼈어. 1 더하기 1은 2, 이런 별거 아닌 계산기 만들면서도 신기하고 재밌었지. 보니까 내가 키보드 타자 치는 법도 잘못하고 있었더라고. 게임할 때 쓰는 키만 썼던 거지. 

배우는 건 어땠어? 해볼 만했어?

따라가기 힘들긴 했지만 재밌었어. 나중에는 혼자 게임을 하나 만들었어. (어떤 게임이었어?) 코에 있는 피지를 뽑는 게임. (취향 진짜 특이하다.) 피지가 주인공이야.(웃음) 피지가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가는데, 그걸 화면에서 터치해서 세균들을 피해가며 계속 올라가야하는 게임이었어. 

‘코딩’하면 어렵다고 생각을 하잖아. 근데 막상 해보니까 되게 신기하고, 뭔가 내가 만들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냥 하게 되더라고. 막 해보다가 뭐가 안돼, 그러면 또 검색해서 되게 하는 방법 찾고. 그러면서 공부가 되고 하더라. 신기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실력이 늘면서 재미도 생기고. 내가 만약에 단순히 취업을 해야겠다 싶어서 억지로 코딩 배웠으면 오래 못했을 것 같아. 

IOS 개발 국비지원 프로그램도 들어갔었어. 일단 아이폰 쪽을 배워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갔었거든. 좀 빡센 데였어.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풀타임으로 해야됐거든. 그렇게 네 달 정도 배우고 나머지 두 달은 실제 어플 만드는 것처럼 프로젝트를 해. 역할도 실제처럼 나누어서 팀을 짜고. 그 프로젝트를 하는데 내가 제일 어렸거든. 그런데 내가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야 되는 자리를 맡았어. 서버분들이랑 서로 간에 일을 나누고, 급하게 상황에 따라 조율도 하고, 최종적인 종합도 하고. 데이터 설계나 디자인 설계도 좀 해야했어. 내가 전체를 이끌어 가야 되니까 모르면 안 되잖아. 그렇게 하루종일 코딩하고, 마치고 들어와서 자면서도 고민했던 것 같아. 뭐 안 되는 거 있으면 자다가도 생각이 나고. 그렇게 했던 경험이 되게 도움이 되어서 실력이 많이 늘었어.

그렇게 지금은 1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잖아. 창업을 한 셈이네. 

보통 다 취업을 하는데 나는 취업이 하기가 싫었어. 어렸을 때부터 회사 일이 내 일도 아닌데 내가 내 일처럼 해야 되나, 그런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 그때 한창 판교에서 게임 세미나가 많았거든. 같이 공부하던 사람 중에 뜻이 맞는 사람이 있어서 함께 창업을 했어. 그게 2019년도. 창업이라고 해도 세무사 한번 갔다 오는 창업이었지. 처음엔 피아노 연주하는 앱을 만드는 외주를 하기도 했고. 계약금을 못 받게 돼서 법적 분쟁 한 적도 있어. 그러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도 몇 개 출시를 했어. 게임 개발한다고 하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게 많아. 사무실도 그렇고, 주거 지원도 있고. 

지금은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개발자가 됐네. 

응, 이렇게 돌아보니까 항상 욕심이 좀 났던 것 같아. 지금 나쁘지 않은 데도 뭔가 마음에 안 들고, 좀 더 잘해야 될 것 같고. 내가 취업도 안 하고 대학도 안 가고 그랬어서 창업을 하고부터는 불안감을 같이 안고 살았거든. 그런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경력도 쌓이고 강의도 하니까 나아지고 했고,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쭉 얘기해보니 진짜 다양한 일들을 해왔네. 노래도 열심히 했어, 커피를 하기도 했고, 중장비를 운전하기도 했고.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코딩으로 게임 개발을 하고, 요즘은 또 강의도 하고 있네. 

하려고 하면 다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낀 것 같아. 진짜 내가 굴삭기 처음 운전한다 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감조차 안왔거든. 그런데 하다 보니까 다 나름의 답이 생겨. 시작하기 전의 두려움 같은 게 많이 없어진 것 같아. 코딩도 뭔가 벽이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하다보니까 용어가 어려운 거지 개념 자체는 진짜 쉽구나, 하는 것도 느꼈고. 물론 순간순간 내가 되게 못 살고 있다, 적어도 잘 살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어. 경제적으로 힘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고. 내가 엄청 고집이나 자신감이 있어서 이렇게 한 건 아니었고, 그래도 계속 뭔가를 하려고 해오다가 뒤돌아 보니 내가 이런 것까지 다 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게, 고등학교 때 나는 고민이 엄청 많고 뭔가 해보기 전에 걱정도 많은 애였거든. 그때 너가 항상  ‘전우주적으로 생각해봐’ 이 말을 했어. ‘나 이 동아리 들고 싶은데, 오디션 볼까?’ 하면, 네가 ‘어, 전우주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라고 했잖아. 그 말이 너무 웃겨서 진짜로 용기가 생겼어.

맞아, 맞아. 우주에서 이거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도 종종 떠올리거든. ‘내가 이 일을 죽기 전에 기억할까? 어차피 기억 안 난다 이거는.’ 내가 옛날에 했던 말인데 다시 들으니까 나한테도 또 도움이 되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고등학교 때 가졌던 생각이나 진로를 변경하는 게 뭔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잖아. 진로를 바꾸면서 본인한테 실망하게 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까지 음악하고 싶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네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전지구적으로 생각해봐.’ (웃음)  일단은 뭘 하든지 어려움이 있고, 무조건 힘든 시간이 있을 거고, 지금의 그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나는 이런 컨셉의 사람이다’라는 걸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속마음으로는 ‘이거 그만하고 싶다’하는 마음이 끓을 수도 있잖아. 나 이제 힘들고 그만하고 싶은데 뭔가 주변에서는 ‘너는 이거 할 것 같아’ 라고 말하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시대가 변했는지 아니면 요즘은 그냥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별로 없고 그런 컨셉을 유지하면서 사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 진짜 좋은 친구들은 뭘 하든지 응원해 줘. 

‘컨셉’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그런데, 예전의 너의 컨셉은 뭐였던 것 같아? 고등학교 때.    

‘나는 어떻게 해도 신경 안 써. 뮤직 이즈 라이프’, 이런 컨셉이었던 거 같아. 걱정 안 하고 그런. 지금은 불안감이나 걱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책임지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니까.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욕심은 많았던 것 같아. 그때는 욕심은 많은데 약간 행동이 안 떨어지는 스타일이었달까.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 코딩이라는 게 사실상 언어같은 거거든. 뭔가 나한테는 영어랑 비슷한 거 같아.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그걸로 끝이 아니고 회화를 할 수도 있고 영어로 책을 쓸 수도 있고 번역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잖아. 코딩도 똑같이 코딩을 배우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거든. 그런 것들을 이것저것 조금씩 계속 해보는 중이야. 옛날에는 무대에 서고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하는 에너지의 방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코딩 쪽으로 뭘 못 하면 화가 나. 스스로한테 실망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하게 되기도 하고.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경유해서 지금에 도착했는데, 돌아보니까 어때? 

한 사람의 경력이라고 하기에는 특이하달까. 대학을 가고 회사에도 들어가고 그런 것도 물론 좋지만, 만약에 그랬으면 이렇게 다양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는 내가 잘하고 싶고 욕심 나는 걸 찾은 것 같아서, 지금부터는 좀 더 계획을 세워보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꾸준하게 걸어가고 있어. 그걸 찾는 과정이었지 않을까. 

네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해서 한 번 이렇게 시간을 가지고 진득하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 오히려 친구끼리 이렇게 길게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잖아. 

엄청 다양한 것들을 해온 것 같고 쓸모없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내내 엄청 열심히 달려온 건 아니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있었고 ‘현타’ 올 때도 많았거든.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을 좀 줄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 그래도 뭔가를 한다는 거. 그렇게 스스로 좀 답을 찾는달까. 나도 부딪히기 전에 진짜 생각이 많은 스타일인데, 막상 부딪혀 보면 별거 아닐 때가 많았어.

그리고 나는 간디학교에서 코딩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코딩을 시작했으면 군대도 면제 받을 수 있었고. 남자애들한테는 군대가 심각한 고민이란 말이야. 그리고 학교에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잖아. 뭔가 만들고 싶을 때에 코딩 같은 걸 알고 있으면 정말 만들 수 있는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또 그렇게 만든 게 다 남아.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 꼭 그런 교육을 좀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어떨 것 같아?

솔직히 지금도 갈림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올해 아마 게임 멘토링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서 몇 개월 정도 그걸 하게 될텐데, 교육 쪽으로 가게 될지 아니면 개발에 더 집중하게 될지 고민을 하는 중이야. 둘 다 재밌어서.. 어디에 좀 더 집중을 할지. 그것도 욕심이 많아서 못 정하고 있는 것도 있는데, 둘 다 해보면서 정하게 될 것 같아. 

너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을 해왔잖아. 선택을 할 때 너만의 기준 같은 게 있어? 

내가 어떤 걸 결정할 때 진짜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거든. 메뉴 결정할 때도, 뭐 하나 살 때도 진짜 고민 많이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뭘 해야할지 큰 것들을 결정할 때는 오히려 머리 아프게 고민 안하는 것 같아. 일단 하자. 고민할 때 대신 기회 같은 걸 좀 알아보는 편인 거지. 이런 걸 내가 좀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있나, 잠깐이라도 경험해 볼 수 있나, 하는 기회가 가까이에 있다면 그쪽으로 가. 먼저 한번 해보고 맞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다른 기회들을 찾아보고. 해봐야 아는 것 같아.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폭과 영역이 굉장히 넓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말한 것처럼 코딩이 외국어 같은 거라면, 노래를 해본 사람들끼리도 소통하는 언어가 있고 커피를 해본 사람들끼리도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외국어를 여러 개 하는 사람처럼 누굴 만나도 그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껴져. 

후회는 항상 있어. 여기서 이렇게 할 걸, 저기서 저렇게 할 걸. 후회는 항상 있는데 어쩔 수 없어. 어떻게 보면 욕심이 많아서 쉽게 완벽했다고 말을 못하고 아쉬운 것도 많은 거니까. 되게 다양하게 해보다 보니까 여기저기에서 아쉬운 점도 놓친 기회들도 많았지만, 그러면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