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모질었던 여름이 끝나가네요. 비,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비가 내렸던 8월이었지요. 그런 무지막지함 앞에서는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귀한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호에 담은 글들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는 전하는 사람도 옷매무새를 다듬게 만듭니다. 다 엮고 나서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어요. 가능성이란 하늘에서 기적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의 생활을 짓고 다듬으면서 아주 조금씩 분명해지는 것이겠다고요. 
10호를 앞두고 있는 '너머의너머'도 새로운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는 더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더 멀리 전해 보려고 합니다. 차차 공개할 테니 저희의 가능성도 기대해주세요. 
이 빗속에서 여러분들의 생활이 안녕하셨기를.  그래서 무언가가 짙어지고 흐릿해지는 모습이 마음에 드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시차 적응 중

방금은 있지, 을지로에서 할 일을 하다가 이름만 듣던 친구도 만나고 5년 만의 친구도 만났다. 그리고 10시간 동안 날아와 방금 전 귀국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시차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지금 생경한 느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자신이 읽은 책 구절 중에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육체보다 영혼이 더 늦게 따라온다.’며 지금 영혼은 열심히 한국을 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에 적응하기 어려운 거였구나. 그러다 물리적 이동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심히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표현을 보고 의미를 얼른 알아채 적절히 반응하는 일이다. 오늘은 국 안의 무가 먹기 싫다며 숟가락을 앞에 두고 눈을 꼭 감으며 우는 아이와 함께였다. 눈을 떠야 음식을 보고 먹을 수 있으니 눈을 뜨라고 말하였고 그는 눈을 비비며 자꾸 울었다. 사실 울음은 안 나지만 눈을 비비며 울음의 이유를 만들어내다가 손에 묻은 게 눈에 들어가 진짜 울어버린 사안이다. 이들은 “무는 먹기 싫고 울고 싶은 기분이라 눈을 비볐는데 손에 묻은 게 눈에 들어갔으니 따가워서 눈물이 나. 눈을 씻고  싶어.” 라고 말하기 어려워 울곤 한다. 그럼 난 그의 손을 잡고 세면대로 가 눈 씻는 것을 도와주고 “먹기 싫은 거 다는 못 먹어도 한 입은 먹어볼 수 있다”라고 말해주며 무채 한 숟가락을 먹여준다. 눈도 안 아프고 한 입만 먹어 기분 좋아진 그는 도시락 정리를 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는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사실 먹기 싫은 거 안 먹고도 잘 사는데. 머릿속에서 이분할로 먹기 싫은 것을 안 먹는 나와 먹이고 있는 나를 본다.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나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생생하다. 얼마 전엔 17기 친구들과 만나 쪼그려 앉아서 과자를 먹었다. 그때의 얘기에서 지금의 얘기로 옮겨오는데 그게 실감이 안 났다.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과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그 삶들이 비슷하고 말고를 떠나서 언제 우리가 스물다섯이 되었지? 라는 생각이었다. 간디학교도 대학교도 졸업했다만 내 영혼은 아직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를 넘나들고 있구나. 아까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나는 아직 시차 적응 중이구나.

진로 고민은 사실상 7살 때부터 끝난 지 오래였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어린이집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는 내가 당한 걸 복수하고픈 마음이었다면 고등학교 시절 자소서를 쓰며 교사가 되고픈 마음을 보기 좋게 정리하였다. 유아교육과에 진학하며 졸업을 하기 전까지도 내 전공 선택엔 후회가 없었다. 유아교육을 공부하는 건 나를 공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는 교사라는 직업을 꿈꾸고 있는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랬던 나는 2022년,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만다. 정식 출근 1일차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등원 1일차 영아와 만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아이를 떨어뜨린 나는 순식간에 둘 사이의 악마가 되었고, 나를 이렇게까지(나의 청바지를 물어뜯으며 엉엉 울 정도로) 싫어하는 생명체는 처음 만나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새로운 집과 새로운 일터와 새로운 아이들과 첫 월급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리곤 18년 동안 지켜왔던 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적응의 문제인가 나의 진로 선택의 문제인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스물다섯 때 무얼 하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대학원에 갔다고 하고. “난 40살이 넘어 공부를 시작했어.” 난 무엇에 위로를 받고 싶은걸까? 사실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라며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그녀들이 말했다. 언제라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좋은 문장도 가지고 싶고, 노래를 만들고 싶고, 앨범을 내고 싶고, 동요집도 내고 싶고, 하염없이 물을 보고 싶고, 춤도 추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명예도 갖고 싶고… 원래 스물다섯은 이렇게 불안정한 숫자였나. 꿈꿔왔던 스물다섯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건 ‘각할모(각자 할 거 하는 모임)’다. 북쪽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만 요즘은 새로운 공간에서 멀리 사는 친구들과도 할 일을 함께 하고 싶다. 일하느라 친구들을 못 만난다면 친구와 일을 하자. 많은 말은 필요 없다. (어딘가 노래가사 같지) 음. 이게 나의 시차 적응 이야기다. 

*연두부를 좋아해 연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한창 힘들 땐 이름 따라 가는 거라고 연두라는 이름이 너무 물렁해 그런건가 호두가 되려 했다. 아이들에게 “연두 이름 바꿀까? 호두 어때?” 라고 물어보니 “호두? 나 호두 알레르기 있어.” 라는 말에 연두로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반갑습니다. 우선 두 분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영인: 안녕하세요, 저는 산청에 살고 있는 20기 스물 두 살 손영인이라고 합니다.

준휘: 저는 산청에 이사온 20기 김준휘입니다. (웃음) 얼마 전부터 같이 즐겁게 음악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산청으로 와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간디학교에서도 같이 음악 활동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산청에서 의기투합을 하게 되신 거네요. 각자 학교에서 어떻게 음악에 대한 관심을 키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도요.

영인: 저는 음악을 중학교에서도 열심히 했었어요. 졸업 작품을 1년 프로젝트로 만들어야 했는데, 작곡하고 기타를 가지고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걸 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어요. 이게 진짜 좋다, 그러니까 직업적으로 할 수 있냐를 떠나서라도, 뭔가 ‘내 것’ 같다는 생각이랄까.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니까 이게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기술적인 면에서요?) 지금 돌아보면 별 차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크게 느껴졌죠. 그러다 2학년이 되면서 같이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밴드를 하면서 조금 바뀌었죠. 직업으로 이어가볼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요. 결국에는 조금 깊은 취미 정도로 생각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요. 그렇게 지내다가 준휘를 음악적으로 만나게 된? 장면이 기억나는데, 음악실-

준휘: 네, 저도 기억이 납니다.

영인: 어느 날 음악실에서 준휘랑 3학년 작곡 수업 때문에 같이 곡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준휘가 통기타를 들고 그냥 이렇게 저렇게 만드는데, 엄청 러프하고 안 다듬어진 것이었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러고서 얼마 있다가 졸업 작품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준휘씨 음악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제안을 먼저 하신 거네요?

준휘: 제 쪽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졸업 작품을 계획할 때 처음에 저는, 단편 영화를 찍고 싶다. 음악도 엄청 하고 싶었지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는 부담이 되고, 영인이가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끼리 워낙 돈독했어서 끼워달라고 하기가 어색했어요. 그냥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교실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침 그 친구들 세 명이서 평상에 앉아있었어요. 같이 하자고 먼저 말해주길래, 잠깐도 고민 안하고 알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두분이 같이 음악을 하기 시작한 것은 졸업 작품 때부터 였겠네요. 준휘씨도 그 전부터 음악에 관련된 활동을 하셨던 거죠?

준휘: 저는 지금은 아닌데 힙합을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아니, 저는 모든 장르를 좋아합니다. (웃음) 아무튼 제가 1학년 겨울방학 때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거기에서 <싱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보고 밴드라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졸라서 기타를 사고, 친구들이랑 밴드를 처음 해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영인이랑 같이 했던 건 아니고요. 

영인: 기억나요. 기억납니다.

준휘: 그전에도 영인이를 보면, 조용하잖아요. 이제는 안 조용하다는 걸 알지만 (웃음) 1학년 때에는 친하지도 않고, 정말 조용한 친구구나. 그런데 무대에서는 완전, 영인이만한 존재감이 없는 거예요. 보컬이든 누구든보다도, 영인이는 뭔가 강아지가 기타 메고 연주하는 것처럼, 동물적이더라고요. (일동 웃음) 강아지라는 존재는 순하고 착하고 귀엽지만 알고 보면 개과인, 야성적이기도 한 거죠. 정말 닮고 싶은 무대 위의 모습이다,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영인이랑 친구들 몇 명한테 이야기를 해서 밴드를 해보자고도 했었고요. 물론 그때 잘 되지는 않았으니까 졸업 작품 전까지 따로 했겠지만. 그리고 나서 2학년 때 부쩍 친해졌었어요. 제가 영인이 앞에서 많이 울기도 하고, 영인이가 등도 많이 두드려주고요. 그러다보니 같이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마주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다가,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같이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거네요. 저도 그 공연을 실제로 봤는데, 그때 밴드 이름이 ‘헬두루미’였죠? 저는 너무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까먹을 수가 없었어요.

준휘: 이름을 잘못 정했던 것 같아요. (웃음) 정하긴 해야하는데 계속 못 정하겠어서 고민하다가. 같이 멤버였던 다현이가 피피티에 그냥 적어놨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그걸로 정해졌어요.

영인: 저는 준휘가 얼마 전에 이야기해줘서 기억이 났어요. 그 전까지 그냥, ‘졸작 밴드’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웃음) 너무 충격이어서 기억에서 지웠나봐요.

졸업 작품을 시작하시면서 애초에 우리의 이름으로 공연을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잡으셨던 건가요?

준휘: 네. 사실 이름만 들으면 메탈 같은 걸 했어야 하는데. (웃음) 그게 1학기 때부터 준비를 하는 건데, 사실 1학기 때에는 방향을 잘 못 잡았어요. 

영인: 한참동안 고민만 했던 것 같아요. 2학기 때에서야 방향을 잡고 곡을 쓰고 편곡도 했죠. 어디 공개된 적은 없지만 녹음도 하고요. 저는 그걸 만들면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되게 많았어요. 공연 때에 총 네 곡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멤버 네 명이 각자 한 곡씩 만들어오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다보니 각자가 만들어온 곡을 같이 듣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 준휘 곡이랑 제 곡이 뭔가 되게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준휘가 만든 곡 위에다가 제가 뭔가를 얹기도 쉬웠고요. 준휘 곡 위에는 기타를 어떻게 쳐야할지 더 수월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각자가 직접 쓴 곡들을 가져오고, 그 위에 서로의 악기들을 얹어가면서 곡들이 완성되는 방식이었던 걸까요?

준휘: 네. 다현이는 가사를 후렴 부분만 써서 오고, 뒷 부분은 대충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고만 정해왔었어요. 그걸 갖다가 제가 녹음실에 들어가서 즉석으로 불렀고. 그러다가 그냥 깔깔 웃었는데 그것까지 녹음이 됐고. 그렇게 데모를 만들었어요.

영인: 각자 곡의 가사를 직접 썼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졸업 작품이 내가 학교에서 겪어왔던 것을 표현하는 자리인데, 그것을 직접 쓴 가사로 풀어내는 작업이 중요했던 것 같고 그게 잘 되었던 것 같아요. 다현이가 후렴에 간단한 말 한 마디를 가져왔던 것도 그렇게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었을 거고요. 현욱이는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었고. 저랑 준휘는 표현하고자 했던 게 약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여기서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준휘: 영인이가 곡을 써왔는데, 저는 그때까지는 그냥 우주와 관련된 곡을 써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영인이가 써온 곡이 가사에 별이 들어가더라고요. 그 노래를 듣고 나서, 저는 그 별을 들고 와서 더 확장된 세계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주로 가서 별에 내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게 됐고요.

영향을 받기도 하신 거네요. 공연도 성황리에 올리셨죠? 그 공연과 관객들의 반응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준휘: 솔직히 준비는 거의 안 했어요. (웃음) 하다 보니까 편곡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오로지 다들 거기에 매달려버린 거죠. 새벽에 학교 몰래 내려와서-

영인: 음악실에 몰래 막 문 열어서 들어가서. (웃음) 여러분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준휘: 새벽에 내려와서 하고, 수업 끝나고 여유시간 10분 남았을 때에도 달려가면 다른 멤버들도 다 도착해 있고.

영인: 들어가면, ‘어 있네’하고, 바로 같이 편곡하고. 공연 연습은 거의 한 번인가 두 번인가? 공연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쯤에 같이 생각해 보니까, “이거 공연을 해야 되지 않냐?”, “아, 맞네”. (웃음) 그때부터 이제 준비를 했죠. 하지만 편곡하고 녹음을 하면서 연습도 많이 하게 되었었고, 이미 곡들에 대해서 너무 잘 이해를 하고 있으니까.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준휘: 공연하기 전날인가 리허설을 했는데, 방송부 친구들만 보잖아요. 그런데 반응이, 너무 싸한 거예요. 첫 곡은 뭐, 그럴 수도 있어. 두 번째 곡도 관객이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터질 수밖에 없을 걸, 이렇게 생각했던 것까지 했는데 그냥 싸하더라고요. “네, 다음 순서”. (웃음) 그래서 리허설 끝나자마자 그냥 강당에 이렇게 누워서, “망했다, 망했다”.

영인: 기가 죽어있었죠. 그랬던 거에 비하면 실제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돌이켜 보자면 그때의 공연이 어떤 의미셨던 것 같아요? 학교 생활을 매듭짓는 의미의 공연이기도 했고, 지금 다시 모이신 상황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준휘: 저한테는 두 가지 장면이 남아있거든요. 하나는 공연 전에 녹음할 때인데, 제 노래 마지막 부분에 기타 솔로가 나와요. 그게 영인이가 만들어 놓은 걸, 제가 한동안 연습에 못 가다가 오랜만에 가서 영인이 옆에서 앉아서 들었는데. 가사도 아니고 그냥 기타 소리일 뿐인데, 이게 뭔가 어디론가 질주하는 것 같다. 너무 시원한 거예요. 두번째 장면은 무대에서의 장면이에요. 학교에서 행사 사회를 본다거나 개그와 관련된 걸 하면 저를 부르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사실 저는 그런 게 부담스럽고 오히려 조용히 음악하는 것이 더 끌렸거든요. 그 공연이 뭐랄까, 내가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걸 보여주고 그걸 다들 기쁘게 받아주었던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받았던 에너지가 100인분 정도 되는 거죠. “아, 계속할 수 있겠다”하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영인: 저는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중학교 때부터 공연을 계속 해왔었거든요, 공연 하나 하나가 전부 큰 의미가 있고 좋았던 기억이었어요. 동시에 다 너무 아쉽기도 하고. 그런데 그 공연이 이전과 달랐던 점은, 사실 하나였던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지금 이렇게 여기에 와서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졸업 작품의 영향이 다 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하는 감도 익혔고, 무엇보다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두 분 다 말하자면 그 공연에서 미래를 선물 받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졸업 직후의 고민과 선택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그 시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셨는지도요.

영인: 3학년 때에도 친하긴 했지만, 스무 살 되고 나서 더 각별하게 연락했던 것 같아요. 준휘한테 전화가 오면 별의별 얘기를 다 하고 그랬었거든요. 저는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입학을 기다리는 상황에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2020년 한 해를 거의 집에서 보냈어요. 계속 비대면 수업을 듣고. 그러다 보니까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졸업하기 전에 친구들과 하던 이야기가, “졸업하기가 싫다”, 지금 여기가 너무 좋고 졸업한 다음은 너무 불안정하니까, 그냥 여기서 다 끝나면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래도 막상 대학에 가서 휩쓸리다보면 적응하겠지 하고도 생각했는데, 8개월 가량 계속 집에 있다보니… 혼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조바심도 많이 나고,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이 허겁지겁했던 것 같아요. 

준휘: 저는 사실 그때는 영인이랑 저랑 그렇게 안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인이는 소속이 있기도 했고, 뭔가 그런 불안감을 안 가질 것 같은 친구였거든요. 나중에서야 비슷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때는 왜 그랬는지 영인이가 그런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심했던 것 같아요. 저는 1학년 때부터 마음 한 켠에 대학에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대학에 다 떨어진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에는 뭔가 모든 것들이 어떤 어려운 선택 사이에 내가 걸쳐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저로 이렇게 남아있고 싶은데, 저를 어딘가에 던져두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요. 부모님의 기대와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하고 싶은 것과 미래의 진로. 아르바이트에서 사장님의 짓궂은 농담을 그냥 받아주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서 내가 원래 믿고 있는 대로를 말하는 것. 그 사이에서 선택을 못 하는 채로 계속 무너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괴롭고 저도 모르게 막 화가 나기도 하고. 언젠가는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더 이상 못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내렸어요. 눈물도 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그 때 전화한 게 영인이었어요.

영인: 기억납니다. 기억납니다.

준휘: 안 나도 상관없지만. (웃음) 휴대폰 배터리가 1%가 될 때까지 이야기하고.

쉽지 않은 시기였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찾은 상대가 서로였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네요. 견뎌내는 데에도, 결정을 내리는 데에도 의지가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준휘: 대학에 다 떨어졌다는 느낌도 들고, 친구들하고도 순식간에 거리가 생긴 거니까 위축이 되더라고요. 운전면허 시험도 떨어지고. (웃음) 뭔가 다 안되는 것 같은 거예요. 못 견디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수를 하려고 했었어요.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그때 진짜 친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랑 전화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뭔가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어서… 돌아와서 원래 사놓았던 책들을 다 버리고, 서울에 올라가서 영인이도 같이 고등학교에서 밴드 했던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서 하루 같이 작업한다고 해서 뭔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각자가 가야할 길, 해내야할 것들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저는 기술적인 부분이 물론 중요하지만 1번은 아니다, 2번도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젓가락질이 좀 더 테크닉적인 부분이라면, 저는 숟가락질로만도 충분히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걷게 된 친구들은 젓가락질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계속 숟가락만 이렇게 들고 다니면서, 숟가락만 또 새로 사고 이러는 중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보고 나서 다시 더 위축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이런 마음으로 친구들 옆에 있기가 싫었어요. 좀 떨어진 곳에서 저를 추스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영인이도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가려고 신청해놓은 상태였더라고요.

영인: 저희 넷이 만났을 때에도 그렇고 전혀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마음으로 군대를 가려했던 게 아닐까 하는 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이렇게 대학을 계속 다니면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마음에 입대 원서를 9월에 넣었어요. 사실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군대를 지원했어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붙어서… (웃음) 몇 달 서울에서 자취하던 친구들 집에 얹혀서 지내다가 바로 군대를 가게 된 거죠.

두 분이 비슷한 시기에 정지 버튼 같은 걸 경험하신 거네요. 간단하게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군대 생활을 어떻게 되돌아보고 있는지도 짧게나마 들어보고 싶어요. 

영인: 저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편인 성격인데, 군대에서 더 통제를 많이 받으니까 오히려 반작용처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게 지금의 결정을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 것 같고요. 살아가는 시간 동안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원하는 대로 해보는 것은 되게 좋은 거잖아요. 순간 순간 원하는 것들을 해보자. 원래 그러지 않는 성향이었는데,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해준 것 같아요.

준휘: 저는 군대라는 곳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못 찾겠거든요. 그런데 군대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이상하지만 뭔가 정리를 하고 왔다는 느낌은 들어요. 마음 속에 어질러져 있는 걸 들여다보고, 먼지도 좀 털고 해서 예쁘게 쌓아놨다. 자유로워요, 상쾌해요, 이런 건 아니지만 이때까지 중에 제일 마음이 릴렉스된 상태랄까. 엄청난 시간을 겪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게 되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말로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니까, 자문자답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도 두 분이서 서로 자주 연락을 하셨나요? 군생활을 마치고 얼마 안되어서 이곳에 오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준휘: 요즘에는 휴대전화를 받아서 쓰니까 전화를 할 수가 있잖아요. 제가 전역하기 얼마 전부터는 월요일 저녁 일곱시면 라디오 하는 느낌처럼, 휴대전화 반납하기 전까지 2시간 동안 통화를 했던 것 같아요. 누가 먼저 하자고 한 거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까 이게 라디오 같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엄격하게 지켰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전역할 때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에 영인이가 얘기를 꺼냈던 것 같아요. 같이 음악을 해보자고요.

영인: 전화를 하다가, “나가면 뭐할 거냐”,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준휘는 서핑하고 싶다고 그러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제가, 그냥 즉흥적으로, “같이 음악 해볼래?” 하고 말했던 것 같아요. 이름 걸고 팀 활동을 하자는 건지, 같이 살면서 음악을 해보자는 건지도 없이, 그냥 “전역하고 같이 음악 해볼래?” 하고요. 사실 지금도 구체적인 방향성이 있냐라고 한다면 잘 모르겠으니까. (웃음) 그냥 어떻게 되겠지.

준휘: 그걸 한달 정도 같이 이야기하다가 제가 먼저 전역을 하게 되고, 안군쌤한테 연락이 와서, 빈 방이 있다고. (웃음) 그래서 한달 정도 저는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영인이가 전역하고 나서 같이 준비해서 바로 여기로 오게 됐죠.

처음부터 여기로 올 계획이 있으셨던 걸까요?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같아요. 

준휘: 저는 그렇게 말했었어요. 서울에서는 하기 싫다. 제가 서울에 있는 걸 지쳐하기도 하고요, 음악을 하면 서울에 가서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꼭 그래야하는지 모르겠거든요. 기왕 둘이서 할 거라면 비싸고 여유가 없는 곳에서 하기보다는 나는 시골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처음에는 다른 곳들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시골에서 집이 비게 되면 관리는 해야하는데 살 사람은 없으니까, 공짜로 살면서 관리를 하면 된다는 조건의 집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안군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된 거죠. 원지에 있는 어린이집인데, 올해에 폐업을 하셔서 반 교실 하나를 저희가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안군쌤 부부와 같은 건물에. 저는 거기서 잠도 자고요.

영인: 저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요. 작업실에서는 연습도 하고 녹음도 하고요.

준휘: 소음이 제일 걱정이었거든요. 집주인분도 바로 옆에 살고 계셔서요. 안군쌤네하고도 아직까지는 트러블이 없어요. 저희는 엄청 크게 듣고 연주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시더라고요. “작업은 하고 있냐?” 이런 식으로. (웃음)

이곳에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얼마 되지는 않으셨지만 생활의 루틴은 어떤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다면 여쭤보고 싶고요.

영인: 사실 저희도 3주 정도 밖에 안되어서. (웃음)

준휘: 루틴이 잡혔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좋게 같이 운동을 갔다가 돌아와서 점심을 같이 해먹고요. 그 다음에 오후 6시까지는 계속 작업을 하고, 저녁은 따로 먹거나 같이 먹거나 하고 영인이는 퇴근을 하거든요.

영인: 저는 본가가 여기에 있기도 해서 집에 가서 자고요. 경제적인 면은 사실 정말 돈이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 월세 내는 거랑 처음에 장비 마련할 때 말고는요. 점심 해먹는 정도가 드는 돈이고요.

준휘: 저도 저녁은 안군쌤네랑 같이 먹거든요. 그래서 약간, 행운아인데, 매일 맛있는 요리를 먹는… 아들이 된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웃음)

영인: 돈은 장비 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 받은 월급으로 충당했는데. (웃음)

준휘: 살 때에는 다 좋은 것으로 사고 싶잖아요. 그런데 다 최소한 수준이 되는 것 중에서 제일 싼 것으로 샀거든요. 괜찮다고 생각한 것 중에 싼 것, 보다 조금 더 싼 거. (웃음) 어쨌든 마련을 해서 영인이네 집에 며칠 세팅을 해놨었어요. 그런데 그 전까지는 더 좋은 거 사야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엄청 불안했었는데, 그렇게 해놓고 딱 음악을 들어보니까 한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어떻게 되어도 다 상관없다, 이렇게 우리 것으로 듣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구나, 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온데간데 없더라고요. 

음악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시나요?

준휘: 하는 내내 신나지는 않고요. (웃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요. 뭐든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된다고 해서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된다고 해서 계속 안 되는 것도 아니고. 6시간 동안 작업을 한다면, 내내 즐거울 수는 없지만 뭐가 됐든 결국 끝날 거다. 너무 즐거우려고도 하지 않아요. 망해도 너무 망했다고 생각 안 하고, 그냥 또 “이렇게 하면 또 재밌을까”, 하면서 이어나가는.

영인: 저는 스무 살 때 혼자 그냥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10곡 정도를 만들었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계속 그런 마음으로 뭔가 해왔어서 크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준휘랑 만나서 이런저런 것을 해보고 하다보니까, 지금은 실험적으로 뭐든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에요. 완전 새로운 것들도 조금씩 해보려고 하고.

완전 새로운 거라면?

준휘: 요새는 펑크록. (웃음)

어, 옆 방 계시는 분의 영향을 받고 계신지. (웃음)

영인: 그런 것도 있고, 막, 알앤비 음악을 해보자. 짧게 트랙을 써보기도 하고. 화성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해보는 것 같기도 해요. 

준휘: 그리고 만약이지만, 결국에 하고 싶은 건 앨범을 만드는 일 같아요. 그것만의 스토리가 있는 앨범. 그런데 딱, 이건 락이다, 이런 식보다는 여러가지 것들이 적재적소에 활용되는. 이 노래는 이 노래이기 위해서 이 장르여야만 한다는 게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데, 지금 음악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두분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말씀 들으면서 인터뷰를 마치면 어떨까 해요.

영인: 저는 사실 음악을 진로로 정한 느낌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 말이 그 말인 걸 수도 있지만, 저는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나 계획이 있다기보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에서 막 부딪히고 있는 중인 것 같거든요. 사실 고등학생 때에는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었어요. 음악을 계속 할 거면 전공자가 되고, 그게 아니라면 그만두고 더 이상 하면 안되는 거다. 음악을 안하고 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저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면 안되는 사람이 된 건데, 그런 결정을 해놓고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데에 시간을 막 계속 투자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모순되고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게 그렇게 이분법적이기만 한 건가? 대학을 다니고 다른 직업을 가져도, 평생 기타를 안 칠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이걸 평생 가지고 가면, 좀 느리고 남들이 보기에 좀 이상해 보여도, 저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이쪽을 선택하면 다시 저쪽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부담감에 일단 해보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는데, 그냥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하니 선뜻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요. 시작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시작하면 그 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건데.

준휘: 저는 스무 살 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 거든요. 어떤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말인데, ‘음악이라는 거는 특권이 아니다’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뭔가 아차 싶었어요. 숟가락질과 젓가락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사실 둘 다 상관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는 한 기준에서 뛰어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기의 무언가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중에 하나인 거죠. 누군가는 글을 쓰는 것처럼. 저도 영인이처럼 이걸로 먹고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그런 표현의 수단으로 제 것을 하나 정한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음악이 그걸 가장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요.

두분께서 새롭게 시작하시는 때에 여러가지 말씀을 청해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각자, 그리고 함께 해온 시간을 돌아보셨는데 어떠신지요?

영인: 제가 말을 잘 못하는데. (웃음) 이렇게 뒤돌아보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이 될 때까지는 뭔가 다시 산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때 기억들을 사실 저는 까먹고 살았던 것 같거든요. ‘헬두루미’ 이름도 그렇고. (웃음) 그런 마음으로 했었지 하는 것들이 다시 상기가 되네요. 

준휘: 저는 계속 질문을 해왔었는데요. 어떤 과정에 있었을 때에는 ‘왜 이렇게 힘들까’. 좀 지나서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했었던 거죠. 그 질문들에 답변을 듣지는 못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다 이야기해보니 이해가 되는 느낌이에요. 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결국 이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다. 계속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마치 원래 정해진 것 같은 방향으로. 그리고 이게 다 흔적인 거죠. 미래로 가기 위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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