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에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대화를 전해 듣고는 잠시 멍해졌던 적이 있어요. ‘졸업하고 나니까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어머니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근데 앞으로 인생이 다 그래’라고 대답하셨다고요. '그럼 어떻게 살아?'라는 질문 겸 탄식이 제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지요. 

‘너머의너머’를 만들며 그 답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아는 사람’에게서 ‘모르는 이야기’를 발견하며 깜짝 놀라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늘 보던 풍경이 낯설어지고 자주 쓰던 말들이 새로워졌어요.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는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놀라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윤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느새 10호를 엮기까지 제가 배운 것은 '깜짝 놀라는 법'입니다. 그건 곧 똑같은 일을 매일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법, 한 사람을 오랫동안 계속 사랑하는 법,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 생기지 않아도 살아가는 법인 것 같아요. 여전히 잘 모르는 당신에게, 열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직업

낯설게 되돌리기

초반에 섭외하면 식상할 것 같아서 때를 기다리다가… ‘너머의너머’가 벌써 10호가 됐어요. 10호 인터뷰이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안군입니다. 98년도에 입학해서 2004년도에 졸업한 안준영입니다. 지금은 모교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고, 그다음에 큰 변화는 국어 교사를 하다가 진로 진학 상담 교사로 교과를 바꿨습니다. 최근까지는 수시 철이어서 그 일을 했지.

요새 집을 짓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얘기도 해주세요.

집을 지금 짓고 있고 거의 70퍼센트 지어졌어요. 이야기가 너무 긴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당신도 잘 알다시피 졸업생이 신경이 쓰이잖아. 얘네가 잘 살아야 우리도 보람이 있는 거고. 아이들이 배운 대로 사는구나, 이렇게 돼야 보람이 좀 있는 건데 그게 그렇게 녹록지 않잖아.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래서 공유하우스를 하든 아니면 공간을 만들든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해서 여러 지역을 알아보고 다녔어.

공동주거 공간이자 졸업생들이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을 했던 거야? 

그렇지. 그러던 찰나에 코로나가 터지고 모든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어. 근데 그 시기에 마침 산청으로 귀촌한 내 또래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거지. 아마 코로나 이후로 도시에서의 삶이 지속가능하지가 않다고 많이들 판단을 내린 것 같아. 대부분 30대 초중반 정도이고 직장 생활도 꽤 해본 사람들인데 이제 삶의 전환을 한 거지. 

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교류를 하다 보니 그게 꼭 답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래서 산청을 중심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작은 집이 하나 나오면 그거를 잘 고쳐서, 졸업생들이 놀러 오면 ‘너네 그냥 편하게 거기서 자라’ 그리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쉬었다 가라’ 이렇게 할 생각이었어. 그러다가 마침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수준에서 어떤 빈 땅이 나오게 된 거야.

처음부터 집을 산 게 아니라 땅을 산 거네.

기존에 있는 집들은 수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아주 안 좋은 집들만 나왔어. 그런 거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 생각하던 찰나에 마침 빈 땅이 나왔고, 조그맣게 집 짓는 건 얼마 안 들 것 같아서 대출받아서 지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지. 졸업하고 학교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나 아니면 삶의 전환을 도모하는 친구들이 올 수 있게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 집 짓기가 시작이 된 거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어린이집 건물에 임시로 살고 있다고?

일단 땅을 먼저 샀는데 조그맣게라도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생각보다 초기 비용이 엄청 들더라고. 그래서 원래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 첫 삽을 뜰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집을 팔았어. 우리 집을 작게 짓고 옆에 또 공유하우스를 조그맣게 하나 지을 계획이야. 아파트를 팔고 나서 당장 지낼 때가 마땅치가 않아서 알아보고 있던 차에 동네에서 문을 닫은 어린이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 가봤더니 주인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셔 ‘편하게 지내세요’ 해서 지금은 어린이집 교실 두 칸을 빌려서 생활하고 있어. 아무래도 가정집이 아니니까 먼지도 너무 많고 숲속에 있는 어린이집이라 온갖 벌레들이 다 나와!

굉장히 큰 결정을 한 거네. 뻔한 질문이지만 지금 안군은 배우자가 있잖아. 그 결정을 반대하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해. 

배우자, 그러니까 효림은 내가 학교에 계속 있으면서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 근데 이런 작업들을 한다는 건 내가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그 문제의식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하는 거에 대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물론 이사를 하고 집을 짓고 신경 써야 되는 게 많으니까 스트레스 받기도 해. 하지만 내가 삶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모습이나, 또 집 짓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그걸 통해서 새로운 관계가 계속 생기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

9호 인터뷰이였던 준휘 님도 지금 안군 네서 같이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거든. 공유하우스 시험 버전 같기도 하네.

주방이랑 마루를 공유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산책도 같이 하고 그래. 공유 생활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되게 좋아. 준휘도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었는데, 동네 커뮤니티에 ‘저는 스물두 살 젊은이인데 통장이 너무 가볍습니다. 연락 주세요.’ 이렇게 올렸더니 사람들한테 전화가 되게 많이 왔나 봐. 또 새로운 가능성을 여기서 발견하고 그러니까 재밌더라고.

아까 삶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는데, 안군이 간디 교사로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

13년 정도 됐어. 저번 ‘너머의너머’에 창이 진로 소개 글 보면서 되게 공감 많이 했거든. 모든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보통은 정년 퇴임하기 전까지 20년 30년씩 일을 하잖아.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되게 어려워. ‘이거 대충 해도 되는데’ 이런 유혹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게 장기전이고, 치고 빠지는 일이 아니라 반복적인 일이니까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재학생이던 시절에 안군은 학생들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가장 젊은 교사였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었잖아. 애들이랑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했고. 그 시기를 안군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

사실 기억이 잘 안 나. 그러니까…엉망진창이었지. 날것의 어떤 장점도 있었겠지. 에너지 넘치고 이것저것 하고 하여튼 ‘어디든 애들이랑 같이 간다’ 이런 마음이었어. 동시에 상당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고 교사로서 전문성도 되게 부족하고. 20대 중후반이 자기 생각이 강한 나이대잖아. 그것 때문에 불편했던 학생들도 있을 수 있고. 대학원도 가고 여러 다른 모임에도 나가고 이러면서 많이 반성하고 그랬어.

우리나라에서 완전 입시의 대가인 사람이 있거든. 내가 한번은 우연히 연수 들으러 갔다가 그 사람이랑 한 달간 같이 있게 된 거야. 저녁에 할 일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랑 밤마다 얘기를 했어. 그 얘기 쫙 듣고 화장실에서 샤워하면서 혼자 울었잖아. ‘너무 내가 그동안 너무 전문성이 없었구나. 세상은 교육 흐름은 이미 이만큼 왔는데 우리는 둔철산 자락에서 90년대 담론만 가지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있었구나.’ 그 흐름을 알면서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파악도 전혀 못한 상태였다는 걸 깨닫고 반성을 많이 했지.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그런 전환점 중에 하나였어?

원래 아카데믹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가방끈을 늘리고 싶다는 욕망은 늘 가지고 있었고. 직업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야 되니까 대학원에 진학을 한 건데 공부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더 잘 되는 것 같더라고. 간디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같은 것들이 많이 성숙된 것 같아.

대학원에서 간디학교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고 들었어.

처음에 기폭제는 병훈이지. 병훈이 ‘진정성의 공동체’를 주제로 논문*을 쓴 걸 읽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나는 논문에서 간디학교가 20년 동안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정리한 것 같아. 어떤 교사들이 초창기에 어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 과정을 끌고 오다가, 어떤 고민을 하면서 교육과정을 구성해왔고, 이런 흐름들을 정리한. 논문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재미있다. 근데 이게 이게 논문인가?’. 근데 석사 논문을 발표하고 다시 혼자서 연구 방법론을 꼼꼼하게 공부를 했거든. 그러고 내 논문을 보니까 되게 부끄럽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 하고 최근에 또 대학원에 등록을 했어.

(*윤병훈. "‘자랑스럽게 부적응하기’: 간디고등학교에서의 진정성의 수행과 이중구속"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20. 서울)

또 다른 전환점 중에 하나가 결혼일 것 같은데,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 

이번에 대출받으려다가 알았는데 결혼한 지 7년이 지나서 신혼부부 대출이 안 되더라고. 일단은 더 편안해졌지. 예를 들면 만약에 학부모님들이랑 술을 먹었어. 옛날 같았으면 어디 교실 이런 데서 막 널브러져서 잤을 텐데 지금은 효림이 데리러 와주거든. 그리고 혼자 있으면 내가 낮에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없잖아. 근데 효림도 간디학교를 잘 아니까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해 주고 그게 되게 큰 힘이 돼.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효림쌤이 안 계셨지만, ‘너머의너머’를 하면서 아래 기수 졸업생들을 만나보면 효림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효림도 애들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용기도 얻고, 좋은 자극도 많이 받은 것 같아. 근데 손님 맞이하고 그런 걸 힘들어하기도 해. 사실 이번에 집 짓기를 시작한 게 ‘우리도 나이가 들고 체력이 점점 딸리니까 공간을 분리하는 게 필요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도 있어.

그리고 국어 교사에서 진로 교사로 담당 교과목을 바꾸는 큰 변화가 있었지. 우선 처음에 국어 교사를 선택한 이유는 뭐였어?

특별한 이유 없는데… 국어 전공이 되게 졸업 기준점이 낮았어. 글도 좋아하고 사회학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하고 그러긴 하지만 다른 거는 졸업 조건이 까다로우니까 이거 해야 되겠다. 그리고 막연하게 교육에 좀 관심이 있고, 교직 이수도 뭐 하면 좋고, 모교에서 교사를 하면 좋겠다 정도 생각이 있었지.

이렇게 말하는 거에 비해 굉장히 열정적인 교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국어 교사로서 일했던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면?

전문성이 진짜 없었다.

요새 왜 이렇게 자기 객관화를 열심히 하고 있어?

반성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서툴렀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안군이 해줬던 어떤 말이나 또 읽어줬던 시 같은 것들을 오래 기억하는 졸업생들이 되게 많잖아. 안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는 졸업생들을 보면 어때?

겁나지. 무슨 내가 헛소리를 했을까. 점점 책임감이 생기니까 걱정이 돼. 엊그제도 누가 예전에 내가 보낸 문자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가지고 또 내가 뭐라고 보냈나 엄청 찾아보고 그랬지. 누군가 상처받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거고. 나이들면 겁이 많아져. 그러니까 되게 조심스러운 거지. 조심스러워… 물론 고마운 일이죠. 왜냐하면 내 수업을 수강 신청하는 인원도 되게 많고, 과제연구나 졸업작품 발표회나 이럴 때 언급도 많이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교사로서 자부심도 생기지.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아이들한테 시간과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쏟았었지.

지금도 그래. 지금도 아침에 항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보통은 직장에서 쓰는 가면이 있잖아. 나는 그 가면이 되게 얇다 보니까 경계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사실은 직장인데 학교에 와도 ‘출근했다’ 이런 느낌이 별로 안 들고 그냥 애들이랑 있으면 좋으니까. 편안하잖아. 

진로 교사로 담당 교과목을 바꾸게 된 계기는 뭐야?

일단은 고3 담임을 많이 했었고 졸업 이후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도 많은 편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 2-3년 전쯤 결정을 했지. 해보니까 생각보다 부담감이 커. 나도 어떻게 살지 모르는데 남의 인생을 내가 말하기가 너무 조심스럽지. 사람의 앞날은 진짜 아무도 모르잖아. 내가 점쟁이처럼 찍어줄 수도 없고. 아무튼 되게 조심스러워. 내가 우리 친척들 모여 있는 단톡에다 올렸거든. “나 국어교사에서 진로교사로 바꿔요.” 이랬는데 댓글이 다 그거였어. “내 진로도 상담해줘.”

오히려 대학 보내는 게 제일 편해. 그건 진짜 기술이니까.  ‘네가 이 대학을 가고 싶으면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다. 노력하면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진로 영역은 고민을 되게 많이 해야 되지.

예전에 비해 대학 진학에 대한 시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했잖아.

서울대학교 입시 요강 보면 진짜 감동적이거든. 몇 년 해보니까 우리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방법론이나 교육 철학이나 지금 소위 말해서 잘나가는 대학교들의 선발 방식이 똑같아. 그래서 입시가 학교의 교육이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아. 물론  한국 사회의 학벌 피라미드 구조나 이런 것들은 별개로 하고. 애들이 학교생활을 충실히 재미있게 하면 결과적으로 입시와도 잘 연결되는 경험을 해보니까 시각이 바뀐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내가 아이들한테 또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게 돼. 왜냐하면 기회를 많이 줘야 애들이 그 기회 속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그걸 내가 또 기록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입시 구조를 내가 알게 되니까 학급 활동도 제대로 해야 되고 교과 활동도 제대로 해야 되고 동아리 활동도 제대로 해야 되는 거구나 싶어서 지금 그런 것도 되게 열심히 하거든. 그래서 질적으로도 많이 향상된 것 같아.

안군에게는 일과 삶의 경계가 희미하고 그 둘이 분리된 게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인데, 누군가에게는 피로한 방식일 수도 있잖아.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이 어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가 학교 생활을 편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내가 스스로 가치를 배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두려움도 있지.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르겠지만 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데 나는 배팅을 완전 다 간디학교에 해버린 거니까. 대충 일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여기 뜨자 뭐 이럴 수가 없는 거지.

요새 ‘부캐’ ‘사이드잡’ 이런 말을 많이들 쓰잖아. 그런데 안군은 자아를 여러 개로 분리해놓지 않고 거의 일치되어 있는 것 같아.

이런 방식이 노동 강도가 더 센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한테 더 편하고 수월한 것 같아. 교사 생활을 사이드잡처럼 하는 사람도 실제로 많거든. 그런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결국 학부모나 학생들이랑 갈등 엄청 심해지고 그래. 그런걸 사실은 자기가 다 감당해야 되는 거잖아. 내가 내 일상과 학교생활을 최대한 일치시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교육적으로도 아이들한테 알게 모르게 자극을 줄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들이 내가 학교에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을 해. 사이드잡으로 교사 생활을 하는 사람을 어떤 아이가 신뢰를 하겠어.

안군은 ‘겁이 많아졌다’고 표현했지만 교사로서 훨씬 더 신중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변화한 스스로의 모습이 어때?

아직까지는 너무 다행스러워. 최근에 교류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그래도 엉망은 아니구나’ 이런 느낌을 받거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수준이기도 하잖아.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고 그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이랑 또 계속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니까 그런 게 신기하고 ‘그래도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해.

언젠가는 교사 생활을 그만두게 될 텐데, 그 이후를 생각해 본 적 있어?

2년 전에 세운 목표가 10년 안에 떠나기야. 지금 8년 남았는데 나름대로 기한을 정해놓으니까 떠나기 위한 노력들이 또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더라고. 대학원도 등록하고, 온갖 연구대회나 공모전이나 이런 데도 계속 지원하고, 근데 나 지원한 거 다 됐다? 아무튼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계획이 없었으면 그냥 안주하지 않았을까 싶어.

반대로 안군에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단은 치약은 안 바꿨어. 그래서 한살림 물사랑 치약을 계속 쓰고 있고 옷도 잘 안 사 입으니까 옷도 거의 안 바뀐 것 같고 펑크도 계속… 아냐, 펑크도 많이 바뀌었어. 옛날 펑크는 잘 안 들어.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취향 저격을 해줘서 새로운 펑크를 많이 듣지. (안군 유튜브 알고리즘에 비판적일 줄 알았는데… 대기업에 취향을 조종 당하는 거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알고리즘에 비판적인데 취향을 확장하는 데는 너무 좋더라고. 그런 얘기 하다가도 ‘오! 좋은 밴드 찾았다!’ 하는 거지.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안군이 얘기한 ‘배운 대로 산다’라는 건 어떤 의미야?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 생태, 공동체, 더불어 사는 삶,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자’…이런 것들이 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났으면 좋겠어. 나는 그것대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교육이 살아난다고 봐. 애들도 다 알거든. 저 사람이 하는 그렇게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있는 건가. 예를 들면 내가 딸기를 파는데 난 딸기 안 먹어. 그럼 내가 파는 딸기 누가 먹어.

내가 가르치는 것하고 내 삶하고 거리감이 있었거든. 사실 도시 노동자의 삶이랑 다를 바가 없었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배운 가치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거기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최근에는 간디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 같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 그런 사람들이 용케 서로 연결되고 연결되고 연결되는 게 재미있더라고.

안군도 얘기했듯이 배운 대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가 않고 졸업 후에는 자신의 생존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벅차기도 하잖아. 어떻게 보면 안군도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 뭔가를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기 시작한 것이고. 그런 고민을 하는 졸업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

나도 뭔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지 1-2년밖에 안 돼. 결국에는 다들 자기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사는 것 같거든. 근데 그게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거랑 다를 수 있는 것 같아. 다르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 결국에 사람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 같고 뭐가 됐든 반인륜적이거나 막 테러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닌 이상은 자기가 악한 마음만 먹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또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그걸 믿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답답하거나 잘 안 풀리면 삶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필요한 것 같다.

안군은 그럴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거고.

그렇지. 만약에 도시에서 삶이 너무 어려우면 시골의 삶을 고민해 볼 수도 있는 거고, 시골에서의 삶이 어려우면 도시에 삶을 고민할 수도 있는 거고, 여럿이 사는 게 힘들면 혼자 사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는 거고.

결국은 다들 각자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된다면, 그럼에도 안군이 할 수 있는 혹은 하고 싶은 역할은 뭘까?

추상적이긴 한데…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뭐가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

...언제 이렇게 컸어?

너 계속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어. 오랜만에 학교 선생님 만난 기분이야. ‘선생님 저 졸업했어요~!’

인터뷰 윤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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