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에서 춘식까지

반갑습니다. 우선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저는 산청간디학교 17기 진석원이라고 하고요. 지금은 ‘대안대학 지순협(이하 지순협)’이라는 곳에서 교육 기획자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춘식’이라는 활동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어요.

‘춘식’이라는 귀여운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어요?

제가 어릴 때 불리던 별명 같은 거었어요. 저희 누나 이름이 ‘가을’이거든요. 조부모님이 누나가 가을이고 저는 봄에 태어났으니까 봄 ‘춘’ 자를 넣고, 남자애들 이름에 붙이는 ‘식’ 자를 붙여서 반쯤 재미로 지어주셨던 것 같아요. 요새 레트로가 유행이기도 해서 지순협 활동명을 정할 때 그 이름이 좋겠다 싶었어요. 

저희가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 문자를 주고 받았잖아요. 답장을 너무 완벽하게 보내셔서 감탄했어요. 빠른 답장 속도와 완벽한 맞춤법과 적당한 사회적 상냥함에 필요한 정보를 딱 넣어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저도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섭외하고 소통하는 일이여서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되더라고요. 요새 카톡 쓸 때도 온점 찍는 사람이 됐어요. 

일을 해본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저희가 지금 지순협에서 만났는데, 교육 기획은 어떤 일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우선 지순협은 협동조합 법인이고 그 안에서 여러 일을 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대안대학 지순협’이라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그 외에도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연구나 기타 용역 사업들도 수행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대안대학 운영이 가장 비중이 큰 사업인데 저는 그 교육과정 기획에 참여하고 있어요. 선생님들 섭외부터 시작해서 수업 준비하고, 학생 분들 관리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업무를 가장 많이 하세요?

단계를 나눠봤을 때 기획, 섭외, 실행, 그리고 아카이빙 같은 마무리 작업이 있다고 하면 저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 ‘어떤 수업에 어떤 분을 모셔서 어떤 내용을 나눌 것인가’와 관련된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동료들이랑 회의도 많이 하고, 스스로 조사하고 공부하는 데도 시간을 많이 써요.

최근에는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어떤 수업을 기획하셨어요?

최근에는 탈성장과 페미니즘을 같이 사유하해보는 수업을 기획했고요. ‘청년 권리장전’이라고 불특정 다수의 청년들 대상으로 노동이나 주거, 경제, 정서 건강 같은 주제를 공부하는 외부 프로그램 진행도 했어요.

그 전에는 지순협 학생이셨기도 하지요. 지순협 입학을 어떤 계기로 결정하셨는지 궁금해요.

저희 누나가 저보다 1년 먼저 지순협을 다녔어요. 고등학생 때 누나를 통해서 지순협이 어떤 공부를 하는 곳인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저도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로 지순협을 고민하고 있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지순협에서 직접 간디에 입학 설명회를 하러 왔거든요. 그때 마음이 확 기울었던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 마음이 확 기울게 되셨어요?

간디를 졸업할 때쯤 저에게 가장 큰 화두는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었어요.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의 주기에 맞춰서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순협에서 부모나 사회로부터 독립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 ‘독립’이 중요한 화두가 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족에 대한 애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누구나 있고 그래야 하는 때도 있을 텐데 저에게도 그런 게 있었어요. 간디학교를 갔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도 기숙학교라는 점이었어요. 

그러면 시간을 좀 돌려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중학교 때까지는 일반학교 생활을 하셨던 건가요?

좀 복잡한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다니던 학교가 없어져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일반 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고등학교 때 간디를 갔어요.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을 다 경험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그렇게 양쪽을 다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도 같아요. 

일반학교 경험이 저에게 남겼다고 자평을 하는 건 ‘사회화가 됐다’. 그전에 대안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엄청 악동이었어요. 사실 악동이라는 말도 귀엽게 포장한 거고 그냥 망나니였거든요.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말을 진짜 안 들었고 사고도 많이 쳤죠. 근데 일반학교에서 ‘사회에 내가 따라야 하는 룰이라는 게 있구나’하는 걸 알게 되긴 했어요. 그걸 알게 되는 과정이 좋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룰이 뭔지는 알게 된 거죠.

어떤 생각들을 거쳐서 간디학교 진학을 결정하셨어요?

룰이 뭔지는 알았는데 그 룰에서 계속 살고 싶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 누나가 먼저 간디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누나의 영향도 컸고요. 그리고 집에서 학교를 가려면 대중교통을 1시간 정도 타고 가야 되고,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셨고, 누나는 간디학교에 있고, 학교가 끝나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는 환경이었거든요. 외로움을 많이 느끼면서 친구들이랑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걸 되게 기대했었어요.

형제나 자매가 간디학교를 먼저 다닌 경우에는 입학하고 나서 일종의 환상이 깨지는 과정을 겪기도 하는 것 같은데, 석원 님은 어떠셨어요?

전에도 대안학교 경험이 있으니까 딱히 그런 건 없었는데, 누나와 같이 학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한테 누나랑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여전히 악동 기질이 남아 있었거든요. 입학했을 때는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던 아이가 딱 크리스마스가 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친구들이랑 같이 사는 세계에 들어왔으니까 그런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마 누나랑 다르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봉인 해제’가 된 거네요. 지금은 간디학교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세요?

일단 좋은 쪽으로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태도가 강한 사람이었고, 다만 책임감은 좀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수업이라든가 약속 같은 것들을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수행을 안 했고, 반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엄청 열성적으로 했고요. 양면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고등학생 석원 님이 스스로의 주체적인 기준에 따라서 가장 열성적으로 했던 일은 어떤 거였나요?

제가 2학년 때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무상급식이 일방적으로 중단이 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친구들이랑 그것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었죠.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창원에서 거리 피켓팅 같은 것도 했고요. 처음에 안군이 ‘너네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을 던졌는데 그게 학생들 사이에 의제로 던져졌을 때 생각보다 다들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점점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떤 활동들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일이 됐죠. 학부모님들도 많이 도와 주시고 언론도 타게 됐고, 당시 도지사였던 홍준표의 저격을 받기도 하고요. (웃음) 

‘간디학교 같은 귀족학교까지도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현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나온 게 그때군요. 아주 치사한 방법이었죠. 

논점 흐리기였죠. 당시에는 굉장히 분개했었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너무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다시 말할 기회는 별로 주어지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결정을 한 정치인이 콕 집어서 언급을 할 정도로 피드백이 왔다는 건 굉장한 성과였지 않나 싶어요. 

청소년 때 도지사에게 저격을 당할 정도의 활동을 해본 건 굉장히 큰 경험일 것 같아요.

각자 역할을 맡아서 다같이 활동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을 할 때 누군가는 의견을 모으고 그걸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를 이끄는 역할을 해야하잖아요. 말하자면 제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고 그런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다는 거를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그 경험이 이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운동 시기였거든요. 무상급식 활동 때 만들어진 청소년인권단체나 경남 지역의 다른 학교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었는데, 거기서 다시 연락이 와서 간디 학생들 이름으로 탄핵 성명서도 발표하고, 서울에서 집회하면 다 같이 버스 타고 가서 참여도 했었고요. 

어쩌면 계속 비슷한 맥락에서 활동을 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 활동들을 거치며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지순협에 진학하신 건가요?

공부를 엄청 하고 싶어서 온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독립적으로 생활을 하고 싶고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싶은데 그걸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을 때 지순협이 보였던 거였고, 사실 처음에는 2년을 다 채울 생각도 별로 없었고, 여기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그러다 다른 게 하고 싶으면 하자는 마음으로 입학을 했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까 내가 한평생을 노동해야 되는 사람이라는 게 어느 순간 엄청 실감이 났어요. 어쩌면 이 시기가 내가 인생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2년을 보내자고 생각을 하고 딱 그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순협에서 보낸 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요? 

일단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열심히 했었고, 학생회 대표도 한 번 했어요. 그리고 영화 감상 세미나가 하나 있었어요. 영화 사조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무성 흑백 영화부터 시작을 해서 최근까지 거슬러오면서 영화사나 주요 영화들을 공부하는 세미나였는데 그걸 되게 재밌게 들었어요.

지순협 졸업논문도 영화 관련해서 쓰셨죠.

맞아요. 세미나 외에도 영화를 비롯한 예술이나 미디어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회적 맥락 안에서 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석하고 실제 삶이나 사회와 연결지을 수 있을지 같은 걸 배우면서 재밌었어요. 그리고 지순협에서 제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페미니즘을 접한 거였기 때문에 그 두 가지를 같이 담아내는 논문을 썼어요.

페미니즘을 접하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궁금해져요.

고등학교 3학년 됐을 때쯤에 동기 중에 몇몇 여성 친구들이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잘 몰랐고 친구들이 하니까 그냥 응원하면서 몇 발자국 떨어져서 있었어요. 그러다 지순협에서 처음으로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학술적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차별이나 혐오나 폭력의 경험들이 있었는지 같은 개인의 경험을 많이 나누는 수업이었어요. 수업을 들을 때도 그렇고 끝나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대화할 때도 그렇고 반년 넘게 여성 친구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만 있었어요. 

당연히 제가 제 경험을 내세울 만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반성을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계속 많이 들었고 그러고 나서 조금씩 제 생각이나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지순협 2학년쯤에는 페미니즘의 역사나 여러 갈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공부했고, 21세기에 들어서 첨예하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들도 접하면서 고민을 계속 이어갔던 것 같아요.

반년 정도는 여성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고 말씀하신 게 인상 깊은데, 그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일단 들어야 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조차 모르겠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심지어 내 앞에 있는 친구가 이야기를 할 때 몸을 어떤 자세로 하고 있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뭔가 나도 잘못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진심어린 반응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친구들 이야기를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을 해요. 좋은 수업에서 시작을 했고 또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이 저를 많이 기다려줬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졸업 논문이 만들어진거네요.

페미니즘 안에서 남성인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고민이 점차 커졌던 것 같아요. 영화 중에서도 한국식 느와르물, 소위 말하는 ‘조폭 영화’가 되게 남성화된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릴 때부터 많이 봤었고요. 그런 영화들에 담긴 모습을 보고 남자들이 어떤 걸 따라하는지 같은 것들이 궁금했고 그래서 그런  내용으로 논문을 썼어요.

남성 페미니스트로 사는 건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괴롭거나 힘들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고 그에 비해 레퍼런스는 너무 부족하니까요.

저도 가장 어려웠던 게 한국 사회에서 보고 학습할 만한 남자 어른이 없다는 거였어요. 롤모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일종의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서로가 같은 가치관과 감수성을 공유한다는 걸 알지만 논문처럼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할 때나 혹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랑 만날 때 “나는 남성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어떻게 내 태도나 말이나 행동에 녹여낼지가 고민이 많이 돼요.

그런 고민을 하던 제 마음에 정말 와닿는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는 책이에요. (저자가 간디고등학교 졸업생이기도 하죠.) 맞아요. 저자인 서한영교 선생님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생으로 오시기도 했었어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페미니즘을 시작했던 사람이 이후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경험들을 했을 때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볼 수 있었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읽다가 울었던 책이거든요. 혹시 ‘너머의너머’ 구독을 하고 계시다면 제 진심을 알아주세요. (웃음) 

*서한영교, 『두 번째 페미니스트』, 아르테, 2019

졸업논문과 동시에 지순협 생활을 마무리를 하셨는데, 졸업할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일단 제 이름으로 된 논문을 썼다는 것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완성도를 떠나서 1년 넘게 고민을 하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논문을 완성했기 때문에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졸업을 했었습니다. 지순협은 졸업을 하고도 수업을 듣고 싶으면 들을 수가 있고 프로젝트 같은 것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은 없었어요. 다만, 간디학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졸업 이후에 대해서 지순협도 많은 보기가 주어지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간디학교를 졸업할 때랑 비슷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된 거죠. 

‘너머의너머’도 그런 고민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기도 해요. 지순협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어요?

그때 제가 생각했던 선택지는 두 개였어요. 첫 번째 선택지는 영화가 좋았으니까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는 거였고, 두 번째 선택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내리 2년을 학교를 다녔으니까 노는 시간을 좀 가지는 선택지였어요. 그중에서 후자를 선택을 했죠. 졸업하자마자 몇 달 동안 바짝 돈을 벌어서 터키 배낭여행을 다녀 왔어요. 그리고 지순협 졸업생들이 만든 독립 연구자·창작자·기획자들의 모임 ‘삼색불광파’에 들어가서 저널을 같이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고요. 인권이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는데 보통 그런 활동은 ‘장애’ ‘성평등’처럼 주제가 딱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특별히 있지 않았고 다양한 분야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지순협 주위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2년 정도 지냈죠. 

그렇게 지내시다가 지순협 측에서 제안을 받고 지금 상근 기획자로 일하고 계신 거군요. 학생으로 지순협에 있을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학생으로 있을 때는 학교에 제 의견이 반영되기를 더 많이 원했던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치 조직을 만들거나 학생들의 고유한 주장을 만들고 관철시키는 활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런 단위가 갖는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학교 측에 대한 일종의 불만 같은 게 항상 있었거든요.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런 요구를 하는 구성원들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을 말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학생일 때는 그게 100%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분명 같이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학생일 때처럼 100%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일하는 입장에서 100%가 되버리면 너무 과한 부담과 책임이 돼요. 저도 그렇고 동료들도 그렇고 개인의 인생과 지순협이라는 곳이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인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둘을 떼어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어떤 일은 좀 더 사무적인 태도로 처리를 해야 하고요. 길게 보고 하는 일이니까요.

십대 시절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뭘까요?

마냥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요. 이전에는 없었던 사회적 자아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저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노는 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편한 자리에서는 나사 몇 개 빠진 사람처럼 있어요. 그런데 일을 할 때는, 지금 인터뷰까지도 포함을 해서, 어느 정도 다른 페르소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 모습을 ‘춘식’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아주 가끔 청소년기의 저를 아는 사람들이랑 일터에서 만나면 ‘왜 이렇게 정중한 척을 해?’ 하고 놀리죠.

마냥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사회적 자아는 완전히 가짜라고 할 수도 없을 테고, 원래의 ‘나’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총합 같은 게 만들어지겠죠. 오늘 인터뷰하면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쭉 돌이켜보니 어떠세요? 

지순협을 다녔던 시기도 그렇고 간디를 다녔던 시기도 그렇고 돌아보지 않은 지가 오래됐어요. 최근에는 오히려 지순협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단체에 대한 성찰은 많이 하지만 제 자신이 어땠는지는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그걸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간디학교의 기억도 비슷하고요. 제가 ‘춘식’이라는 사회적 자아를 만들고 나서 말을 명료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단어와 단어 사이에 고민이 너무 길어지거든요. 근데 중간 중간에 말을 잘 이어주셔서 저한테 필요했던 고민을 마음껏 하면서 대답을 할 수 있었어요.

‘춘식’은 석원 님이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고 실제로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그건 어떤 모습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안 되고 싶은 거 먼저 꼽자면 잘난 척하는 사람은 안 되고 싶어요. 그리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생각했을 때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충분히 부드러우면서도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이렇게 할 거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자기가 해온 것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평소에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계속해서 그쪽으로 가고 계신 것 같아요.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음… 지순협에서 ‘너머의너머’에 광고를 하나 할 예정인데요. 

그럼 마지막으로 홍보 한번 하실까요? (웃음) 

저는 ‘대학 비진학 청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저를 포함해서 사회에서 평범한 생애주기를 벗어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저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제가 일하는 지순협도 대학 비진학 청년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들을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청년의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너머의너머’ 뉴스레터 하단에 광고가 있을 텐데 많이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사랑입니다! (웃음)

인터뷰 윤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