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까요?

뭐.. 존댓말로 해야 되나?(웃음)

쌤 존댓말로 계속하실 수 있겠어요?(웃음)

그럼. 존댓말 잘합니다. 우리 애들한테도 존대하는데!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자기소개 한번 해 주실까요?

문학종. 나이는 마흔다섯. (고민) 30년을 넘게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열심히 재미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30년을 넘게’라는 게 짧은 시간이 아닌데, 하나씩 하나씩 얘기를 해볼까요. 맨 처음에 간디학교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어요? 

어느 날 병수 쌤한테 연락이 왔어. 여기 간디학교라고 하면서 ‘솔뫼바람’이라는 풍물 동아리를 하는데 와서 수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전화가 왔지. 그러고 ‘솔뫼바람’하고 나중에 ‘모듬북’ 수업까지 하게 됐고. 그때가 10기가 1학년인가 2학년인가 그랬어. 그거는 학교 행정실이 더 잘 알 건데. 

대략 2008년부터 오신 건데, 무려 15년 넘게 간디 수업을 하고 계신 거네요.

병수 쌤 말로는 햇수로만 보면 중견급 이상이라 하대. 몇 년 전에 10주년 기념 접시*를 내가 받았거든. 외부 강사한테 주는 건 처음이래. 근데 뭐 학교 정교사는 아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래 왔다 갔다 하면서 학교 변해 가는 거, 애들이 자라고 졸업하고 나가는 거를 쭉 보게 되니까 색다르기도 하고 재미있지.

*간디학교 재직 10주년을 맞이한 구성원에게 수여하는 상패

어떤 수업을 하고 계신지도 설명해 주세요. 

일단 ‘솔뫼바람’ 동아리 선생님이죠. 매주 수요일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요새는 너무 그것만 하니까 식상한 것 같아서 다양한 사물이나 악기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집어넣고 있거든. 그래서 한 몇 년 전부터 5박짜리, 7박짜리 곡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막 연주해 보고. 보통 우리가 사물놀이라고 생각하는 ‘별달거리’ ‘짝쇠’ 이런 것 말고도 말 그대로 ‘사물’, 네 가지 악기를 이용한 가락들을 새롭게 해보고 있어. 축제 때마다 맨날 하던 사물놀이 하면 뻔하잖아. 변화를 주니까 보는 사람도 즐거워하고 우리도 재미있고.

특기적성 수업으로 ‘모듬북’ 수업도 오래 진행하고 계시죠.

‘모듬북’도 10년 넘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안 했다가 요새 다시 하고 있고. 어떤 해는 아예 체육 수업으로 들어가서 브라질 음악 ‘바투카다’라고 서서 움직이면서 타악기 연주하는 걸 한 학년이 같이 했었던 적도 있었고. 

학교 축제 때 학생들과 같이 공연한 적도 있으시고, ‘문화의 밤’ 행사에서 직접 공연을 하시기도 했었잖아요.

겨울 축제 때도 몇 번 같이 하고. ‘문화의 밤’에도 초청받아서 우리 팀이 공연을 두 번 왔어. 우리 팀이랑 비보잉 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상모 돌리는데 옆에서는 막 비보잉 하고 그랬다.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본업 소개를 해주실까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진주 삼천포 농악 이수자이고, 경남 무형문화재 진주 오광대 전수자, 그리고 솟대쟁이 놀이 보존회 운영위원이고… 전통 예술 연희 단체 ‘마루’ 창립 멤버이자 대표입니다.

수업도 그렇고, 공연하실 때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계시네요.

올해 진주 유등 축제 때 플라멩코 하는 팀과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스페인 전통 무용 있잖아. 또 연극 단체들하고 사극 공연도 같이 하고, 진주 시립 국악 관현악단하고도 협연하기도 하고. 하여튼 하자고 하면 일단 해봐.

지금은 진주를 거점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신데 원래 연고가 있는 지역은 아니라고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됐는지 궁금해요. 

원래는 울산이 고향이지. 억수로 긴 얘기인데 알아서 잘라 써.(웃음)

그러면 약 30년 전 ‘북 치고 장구 치기’를 시작한 때부터 말해볼까요. 

초등학교 5학년 때야. 학교에서 특기적성 수업 같은 걸 한다는데 당시에 풍물반이 있었던 거야. 근데 그때는 풍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풍물 시장’만 들어봤어. 그때는 어른들이 풍물이라고도 안 부르고 ‘매구 친다’ 그랬거든. 

그런데 어떻게 풍물반에 들어가신 거예요?

풍물 뜻도 모르는데 내가 풍물반에 들어갈 이유가 없잖아. 나는 친한 친구하고 둘이 ‘우리 컴퓨터반 갈래? 영어회화반 가볼까?’ 이러고 있었어. 선생님이 동아리마다 신청할 사람 손들라고 하는데 한 반에 애들이 50명 넘으니까 신청자가 너무 많은 데는 못 들어가는 거야. 

그러고 있는데 친구 놈이 나한테 바람을 살살 넣어. 교실 저쪽에 여자애들 무리가 있었거든. 걔가 속닥속닥하면서 ‘저 여자애가 너 좋아한다더라.’ 이러는 거라. “야, 쟈가 니 좋아한다!” “아이다!” “아까부터 우리가 손들면 저기도 손들고 우리가 손 내리면 저기도 내린다, 우리 따라올라 하는갑다.” “거짓말하지 마라.” 이래 된 거야. 그러다 풍물반이 딱 나왔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거야. 그 친구가 “봐라, 그러면 우리 풍물반에 손들자, 그럼 여자애들이 백 퍼센트 따라서 손들 거다.” 이런 거야. 그래서 알겠다 하고 둘이서 손을 번쩍 들었지. 

손을 들었는데? 

아무도 없었지.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바로 “둘이 통과! 풍물반!”

너무 웃기다… 운명적이네요. 그 친구는 풍물반이 뭔지 알았던 거예요?

걔도 뭔지 몰랐지! 지금은 그 여자애 얼굴도 기억이 안 나. 그래 가지고 친구하고 둘이서 풍물반에 들어간 거야. 그때 당시에 학교에서 풍물반은 처음 만든 거라 5, 6학년만 모집했어. 운동장에 모이니까 한 40명 되더라고. 선생님이 조례대 앞에 서서 애들 줄을 딱 세웠어. 그러더니 “반장, 부반장 손들어!” 하대. 내가 반에서 부반장이었거든. 그러니까 “너 꽹과리 쳐.” 하더라고.

처음 배웠던 가락이 ‘땅도 땅도 내 땅이다/조선 땅도 내 땅이다/내 땅이다 내 땅이다/백두산 땅도 내 땅이다.’ 이거야. 자진모리장단인데 초등학생이니까 쉽게 외우라고 말을 붙여서 가르쳐 준 거지. 근데 6학년 애들보다 내가 더 빨리 외워서 제일 잘 친 거야. 

처음으로 재능을 발견한 순간이네요. 

그렇지. 그러다 6학년 때 학교 선생님이 본인이 가르치는 걸로 안되겠다 싶었는지 전공자 선생님을 불렀어. 근데 웬 영감님이 오신 거야. 빽구두에 빽바지에 정장을 딱 입고 중절모를 딱 쓰고 오셔서는 “상쇠* 나와.” 하시더라고. 내가 나가니까 꽹과리 한 번 쳐보래. 그러더니 “남아라.” 이래. 

나를 혼자 남겨서 은행나무 앞에서 연습을 시키는데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이런 게 아니라 실제로 쓰는 농악 가락들을 가르쳐 주는 거야. 기억나는 거는 그냥 올 때마다 그 선생님이 나한테 주전자 주면서 술 심부름 시키고, 그거 달랑달랑 들고 가서 막걸리 사 오고, 가면서 나도 한 모금씩 마시고, 또 선생님이 치는 거 막 따라치고 이랬거든. 그러다가 중학교 올라갈 때가 됐는데 나 몰래 그 선생님하고 학교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만난 거야. 얘를 제대로 시켜보자고. 

*꽹과리를 치면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

그때는 거절하셨어요?

엄마가 선생님 왔다 갔다는 얘기는 안 하고 “학종아, 풍물 계속해볼래?” 물어보더라고. 근데 나는 맨날 막걸리 심부름하고, 영감님이 나한테 꼬장 부리고 이런 기억이 강해서 안한다 그랬지. 부모님도 반대하셨고.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면 지금보다 더 큰 데 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결국은 이 길로 오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셨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솔뫼바람’처럼 동아리만 하다가 이제 대학을 갔어. 그때가 딱 IMF 터지고 여파가 심하니까 부모님이 “니는 그냥 기계공학과 가자.” 하시더라고. 진로도 안정적이고 공부를 곧잘 했으니까 장학금도 받을 수가 있었어. ‘알겠심더.’ 하고 갔지.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일주일쯤 지났나 기숙사에 누워 있는데 쿵, 쿵, 쿵 소리가 들리는 거야. 창문을 내다봤는데 기숙사 밑이 학생회관이었거든. ‘전통예술연구회’라는 동아리방이 거기 있었던 거야. 학기 초에 신입 회원 모집을 하잖아. 고민고민하다가 거기 동아리방에 갔지. 선배들한테 막걸리 얻어 마시고 북이랑 장구랑 오랜만에 쳐봤는데, 그래도 내가 옛날에 했던 가락이 있잖아.

웬만한 선배들보다 더 오래 치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배들이 눈이 돌아간 거지. 얘가 악기도 잘 치네, 술도 잘 마시네… 얘를 잡아야 된다! 동아리방에 선배들은 돌아가면서 오고 나는 거기서 잤다가 일어나면 술 받아 마시고 악기 치고… 그렇게 2박 3일을 보낸 거야. 사흘 동안 원 없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놀았던 거야. 와… 진짜 그 해방감이 되게 컸어. 너무 행복하다는 감정이 확 느껴졌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거네요. 지금 말씀하시면서도 눈이 반짝반짝해요.

그날 이후로 매일 동아리방 들렸다가 수업 갔다가, 동아리방 갔다가 기숙사 가고, 이렇게 살았어. 그러다 몇몇 동아리 선배들이 연희를 전업으로 하겠다고 학교를 나갔어. 선배들도 전공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동아리 출신이야. 그런데 선배들 나가서 하는 거 보니까 야… 수준이 다른 거야, 수준이.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이 팍 들더라고. 그때부터 맨날 수업도 안 들어가고 혼자 상모 쓰고 연습을 하다가,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순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가지고 선배들하고 돌아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지. 겨울방학 때도 혼자 배낭 메고 연수를 들어가고. 당시에 경남 함안에 있던 농악 전수관 보존회에 들어가서 6주 정도 지냈거든. 나이도 어린데 와서 열심히 하니까 거기 선생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보존회에 들어가게 됐어. 그 안에서 원래 알던 학교 선배를 딱 만난 거야. 그래서 휴학을 해버리고 선배랑 완전히 사방팔방 전국을 다녔어. 공부하고 공연하면서 제대로 돌아다녔지. 그러다가 영장이 나온 거야. 

입대한 뒤에도 진로 고민을 계속하셨어요?

제대하면 다시 학교를 열심히 다닐 것이냐, 이게 너무 좋으니까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거냐 고민을 많이 했어. 집에서 반대가 심하기도 하고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정을 했지. 1학년 1학기, 2학기 전부 학사 경고를 받았거든. 나 이제 공부할 거라고 상모고 악기고 같이 다니던 선배한테 싹 줘버렸어. 그러고 공부 열심히 해서 제대하고는 장학금도 받았지.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결국 이 길을 택하게 되신 거예요?

어느 날 내가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쿵딱쿵딱 악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누가 하나 싶어서 내다봤는데 아무도 없어. 다시 공부하고 있는데 또 소리가 나는 거야. 또 나왔는데 아무도 없어. 그래서 동아리 방에 가서 물어봤더니 아무도 악기 안 쳤대. 내 귀에만 악기 소리가 들렸던 거야. 

그때 예전에 같이 다녔던 선배한테 전화가 왔어. 선배가 급하게 “학종아, 사람이 너무 없다. 이번만 하자.” 이래. 가서 오랜만에 공연을 하는데 너무 좋더라고. 진짜 너무 좋더라고. 처음 동아리방 가서 해방감을 느꼈을 때랑 비슷했어. 그때 ‘안 되겠다, 나는 이거 해야 되겠다’ 생각이 확 들었지.

그 순간에 마음을 굳히셨군요. 

다음 날에 자퇴서를 냈어. 근데 부모 동의서랑 인감도장이 있어야 된다 해서 울산으로 바로 갔지. 아버지 어머니 몰래 집에 들어가가지고 인감도장 훔쳐 나오고 부모 동의서는 내가 써서 냈어. 인감도장은 다시 집에 그대로 넣어 놓고. 며칠 지나서 아버지 통장에 등록금이 환불 돼서 들어갈 거잖아. “이게 뭐고?” 하고 전화 와서 난리가 났지. 그때 진짜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맞았다.

부모님과 상의하려고 집으로 간 줄 알았는데…(웃음)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시작을 하신 거네요.

가족들하고는 연락 끊긴 상태에서 가방 하나 메고 진주로 왔지. 그때 같이 다니던 선배들이 진주 삼천포농악회에 있었거든. 나는 촌집에 혼자 살면서 아침에 눈 뜨면 비디오 보면서 가락 따고 연습하고, 밥 먹고 연습하고, 그리고 방학 때 일반인들이 전수받으러 오면 가르치기도 하고.

막내로 들어갔으니까 배우면서 허드렛일도 하고 다 했지. 단체니까 인원이 한 40명 되잖아. 공연 때마다 내가 의상 40벌을 다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그래야 되는 거야. 악기, 의상 다 챙겨서 여행 가방 들고 가고 공연 끝나면 다시 다 챙기고 그런 세월을 보냈어. 차비랑 통신비 정도는 벌어야 되니까 그때부터 초등학교 같은 데 가서 수업을 했지.

그 시기에 간디학교 수업도 시작하셨죠. 당시 제 눈에는 어른처럼 보였는데,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새로워요. 

간디에 처음 왔을 때가 서른 살쯤이었으니까 아직 어릴 때였지. 여기저기 수업 다니려니까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잖아. 그래서 뒤늦게 대학을 한 번 더 가서 딱 학점만 채우고 졸업했지. 대학 수업 끝나자마자 공연 연습하러 가고. 목포 갔다가 산청 갔다가 진주 갔다가… 잠도 못 자고 생고생을 했지. 또 청춘도 즐겨야 될 거 아니야. 술도 한 잔씩 마셔야 되고. 술 먹는 돈은 땅에서 솟나? 배우기도 하고 또 배운 걸 풀어내기도 해야 되고 나이가 드니까 돈도 벌어야 되고 그게 다 묶여 있었던 거지.

그 사이에 결혼도 하셨고,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셨는데요.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시기에 비해 달라진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지. 이제는 못 떠나지. 진주 왔을 때는 주머니에 돈 10만 원 들고 까만 배낭 하나 메고 왔거든. 아무것도 없었어. 물론 욕심이나 아쉬움도 있지만, TV에 나가서 유명해진다거나 또는 대단한 명인이 되거나 그런 것보다는 내가 좀 더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 

근데 단순히 즐겁기만 한 건 싫어. 알맹이 없이 말장난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매니악하게,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리면 그걸 이해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잖아. 그 안에서 같이 즐거울 수 있고 ‘딱’ ‘쿵’이 뭔지 몰라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고 바라볼 때 너무 즐겁고. 하여튼 어떤 건지 알겠지?

우연히 연락이 닿았을 텐데, 병수 쌤이 좋은 선생님을 신기할 만큼 잘 찾아내신 것 같아요.

병수 쌤한테 참 고마워. 병수 쌤이 바쁘신 분인데 내가 뭐 부탁을 하잖아? 안 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 만약에 상황이 어려워도 ‘되도록 한번 해봅시다.’ 이러시거든. 그게 되게 고맙지. 사실 강사료가 많지 않거든. 가끔 그런 거를 미안해하시면 내가 “언제부터 돈 벌라고 했다고요, 마음 보고 하는 거지요.” 이러지.

오랜 시간 간디학교에 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학교 20주년에 홈커밍데이 행사를 했잖아. 그때 운동장에 무대 설치해서 기념 공연을 했어. ‘솔뫼바람’도 공연을 했는데 재학생부터 그날 온 졸업생들까지 즉석에서 같이 연습하고 같이 어울려서 공연을 했거든. 내가 모르는 4기, 5기 졸업생들도 있고, 아기 데리고 온 분도 있었어. “선생님, 잘 모르는데 괜찮을까요?” 하시는데 “괜찮습니다. 앞에서 (재학생 솔뫼바람)애들이 할 겁니다.” 하고 다 같이 공연을 했지. 

내가 처음부터는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솔뫼바람’이라는 이름이 그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거잖아. 그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내가 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보람이 있으면서도…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 공연하는데 병수쌤하고 둘이 이렇게 서서 보면서 “너무 좋은데요, 너무 좋은데요.” 이랬던 게 기억이 많이 나.

간디학교에서 수업을 하실 때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기본적인 거는 있지. ‘쿵’을 가르쳐야 되고 ‘따’를 해야 되고. 근데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보진 않아. 전공하는 애들하고는 다르게 ‘솔뫼바람’은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어떻게 발산할 것이냐, 그 에너지를 어떻게 공유할 것이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물놀이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인 거지. 

사물놀이는 ‘무언(無言)’이잖아. 말이 아니라 에너지의 파장 안에서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거지. 그러려면 교감이 돼야 되거든. 가끔 수업에서 이런 얘기 할 때 있어. “너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 이 벽을 허물어야 된다.” 악기를 치면서 서로 주고받아야 되는데 왜 단절을 시키고 있냐는 거지. 

우리가 멀리 있는 사람한테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표정으로 이렇게 반가움을 표시하면 그 느낌이 공유가 되잖아. 우리 사이에 밀도를 높이고 교감을 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얘기를 자꾸 하는 거야. 그럼으로써 우리가 ‘와-’ 했을 때 저쪽에서도 같이 ‘와-’가 나온다. 그러면 ‘쿵’을 치든 ‘따’를 치든 설령 잘못 치든 상관 없어.

‘솔뫼바람’ 혹은 ‘모둠북’을 통해 어떤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가지고 돌아가니까, 그게 학교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연습을 하면서 내가 내 몸 또는 내 에너지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히 살면서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많이 해. 중요한 자리에서 내가 당당해야 될 때 어떻게 내 에너지를 확장시킬 건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소보다 다정다감하게 대해야 될 때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면 삶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 표현을 배우는 거다’고 많이 하지. 기술로 갈 것 같으면 이래 연습하면 큰일 난다 그래.(웃음) 

방금은 한결같이 중요하게 지켜 오신 것을 말씀하셨는데, 15년 동안 변한 게 있다면요?

내가 많이 부드러워졌지. 나이도 좀 들었고, 사근사근해졌어. 너네 때는 집중 안 하면 “눈 감아.” “손 머리! 채 머리*!” 막 그런 시절이 있었고.

*악기를 치는 도구인 ‘채’를 머리 위로

아까 재학생이랑 대화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웃음) 이렇게 다정해지신 이유는 뭐예요? 

내가 변했지. 예전에는 내가 가진 에너지로 확 건드려서 뭔가를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은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에너지를 좀 더 보려고 해. 내가 가서 깨는 것보다 그냥 스스로 깨지길 바라는 것 같아. 

그래도 살살 건들기는 아직도 많이 건든다. 자극이 있어야 뭐가 나오니까. 그렇다고 예전처럼 해버리면 나도 힘들고, 가끔씩 너무 세게 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독특한 애들도 있고 내가 모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애들도 있고. 그러면 나도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그래서 조금 부드러워지려고 하는 거지. 좋게 보면 부드러워졌고, 나쁘게 보면 좀 지쳤고.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모두를 이끌어 갈 수도 있지만,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갈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 어떤 상황에서는 외부 강사로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도 있으실 것 같아요.

아니…? 별로 생각 안 해봤다.(웃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가 뭔데 내한테 참견하나” 이럴 수도 있지. 근데 그 사람이 판단하는 거지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잖아. 나는 식당에서 급식 먹으면서 솔뫼바람 아닌 애들하고도 친하게 말하고 그러거든. 

그리고 내가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중요하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공감하면서 다가가려고 하느냐 아니면 그냥 무작정 그 빈틈을 비집고 파고드려 하느냐 차이라고 생각을 해.

그건 정말 학종쌤이 가지신 힘인 것 같아요.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간디학교를 다닌다는 건 3년 동안 획일화된 틀을 벗어난 삶,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경험한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해. 그 안에서는 나름대로 힘듦이 있겠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의 즐거움이고 자부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론 이게 안 살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어. 졸업하고 나면 사회에 다시 맞춰야 되니까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근데 굳이 맞출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 지금도 애들 막 그러거든. “쌤,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 나도 몰라. 나도 지금 마흔다섯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그냥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삶인 거 같아. 그리고 계속 물어보는 거야.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냐?’ 아닌 것 같으면 ‘뭐가 더 하고 싶은 거야?’ 물어보고 또 찾아가는 거지. 지금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여름 되면 해수욕장 가서 알바도 해보고. 저기도 가보고 여기도 가보고 움직여서 찾아 다니는 거지. 그러면서 내 삶을 넓혀 나가는 거고.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내가 살고 싶은 삶에 근접하게 찾아가는 거지.

그 말대로 정말 그렇게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식상한 조언이 식상하지 않게 다가와요. 

대-단한 선생님이라는 게 느껴지나?(웃음)

인터뷰 윤나은